10.역사문화기행 (2006~) <여행지>/7.국립고궁박물관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복식과 훈장

동방박사님 2019. 2. 22.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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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복식과 훈장

리히텐슈타인의 대공은 자신이 착용하는 복식을 통해서도 왕가의 지위와 명예를 드러내야 했다. 카를 애우제비우스 1세는 이를 위해 그의 저서에서 아들에게 복식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두 달마다 새 옷을 사라고 조언 했으며, 또한 당대의 취향에 따라 최신 프랑스풍 복식을 주문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남성들은 흰 셔츠를 입고 그 위에 자수로 화려하게 장식된 상의를 착용했다. 17세기 무렵까지는 허리가 꼭 맞는 남성 상의인 더블릿을 주로 착용하였고, 실용적인 디자인이 선호되었던 18세기 후반 이후로는 몸의 실루엣을 따라 자연스럽게 흐르는 의복을 입었다.

군복에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국가에 대한 봉사를 치하하는 훈장이나 모범표창을 달았다. 무공으로 이름이 높았던 리히텐슈타인 왕가에서는 가문의 남성 상당수가 함스부르크의 황실에서 공직을 맡거나 군대에서 고위직으로 복무하였기에 황금양모 기사단 훈장이나 마리아 테레지아 기사단 훈장을 수여 받았다. 이외에도 외교 업무의 공을 인정 받아 헝가리나 러시아 등에서 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하르트만 왕자의 초상 (1630년경)

카를 1세의 조카인 하르트만왕자 (1613년~1686)의 초상화이다.

부분이 트인 자켓인 더블릿을 입고 목과 소매에 풍성한 레이스 깃을 달았다. 허리에는 새틴리본을 담아 허리선을 강조했다. 무릎아래까지 내려오느 반바지인 브리치스 안에는 비단 스타킹과 레이스를 단 곁스타킹을 신었고, 덧신과 굽이 높은 부츠를 신었다. 


리히텐슈타인 왕실 남성의 연미복과 자수조끼 -  연미복 :1790년. 자수조끼 :1780년경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남성복식으로, 프랑스풍의 연미복이다. 요세프2세황제 (1741~1790)의 통치기에 남자들의 공식 행사용 의상으로 군복 이었으나, 군 게급이 없을 때에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의상에 기반한 프랑풍 으상을 입었다. 조끼는 미색 비단에 꽃문양 자수를 놓았고, 재킷은 검은 벨멧에 꽃문양 자수로 장식하고 가장자리에 레이스를 둘러 화려하게 꾸몄다.  


오스트리아 영지 대표단의 연미복 1820년경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 프란츠 2세가 오스트리아 동북구 영주들에게 하사한 연회용 제복이다. 황실공식 행사때 에복으로 착용되었으며 요한 1세 대공의 의복으로 보인다. 연미복은 붉은 천에  은실로 화려하게 장식했고, 소매는 푸른 벨멧에 은실로 자수를 놓았다. 영주들의 제복은 황실에 대한 충성과 연대를 보여주는 것 이었고 이에 황실 행사에서 제복을 착용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요한 1세 대공의 초상-요한 밥티스트 팜피 (1751~1830년) 1816년 이전

리히텐슈타인 왕가에서 가장 휼륭한 군사적 인물로 평가 받는 요한1세 대공 (1760~1836)의 초상이다. 나폴레옹 전쟁등 백번이 넘는 전투에 참전하엿고, 공로가 인정 받아 가장 높은 군사훈장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대십자 훈장을 받았다. 1806년에는 라인 동맹에, 1815년에는 독일연방에 가입하여 독립국으로서 입지를 공공히 하였고 공국경영에도 힘을 쏟아 농경과 산림 분야의 관리 방식을 근대화 하였다.













알로이스 왕자비 하나의 초상 - 한스 마카르트 (1840~1844) 1875년

요한 1세 대공의 손자인 알로이스 왕자 (1846년~1920년)의 부인 하나 폰 리히텐슈타인의 초상이다. 그녀는 어두운 배경을 뒤로하고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감각적인 붓 터치와 색채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카롤리네 대공비의 초상 - 에리자베스바제는 르보앙 1798년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 초상화가 대제 그브랑이 헤렌가세 궁전에 걸기위해 그린 알로이스, 1세 대공비 샤롤리네 (1768년~18810의 초상화이다. 프랑스의 신 고전주의 초상화가 벽제 르보링은 카롤리네 대공비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외모에 영감을 받아 신화속 주제를 선택하여 대공비를 무지개 여신인 아리스의 모습으로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