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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런 말을 하세요

동방박사님 2022. 3. 15.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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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시대에 뒤처진 감수성을 가진 무례한 사람들의 말을
우리는 언제까지 입 다물고 듣기만 해야 할까?


여성 혐오의 개념에 민감해지면서 성인지 감수성은 누구나 꼭 갖춰야 할 덕목이 되었지만 뉴스와 우리 일상에서는 여전히 성차별적인 말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2021년 6월에 진행된 한 설문 조사에서 ‘여성 혐오 현상이 어느 정도 심각한가?’ 라는 질문에 남성의 경우 64.5%가 ‘매우 심각하다’ 에 답변한 반면 여성은 무려 85.5%가 답변한 것을 볼 때 성차별 의식 수준이 높아진 것과는 별개로 아직도 여성들이 알게 모르게 일상적인 성차별을 겪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직도 그런 말을 하세요?』는 여성들이 일상에서 접하는 무례한 말들을 구체적 사례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저자인 미켈라 무르지아는 자신이 직접 겪은 사례를 들어 여성 차별적 말들이 어떤 사회적 맥락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이 어떻게 차별적 언어가 되는지를 설명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말들은 집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뉴스에서 관습적으로 쓰이는 것들이다. 이런 말들은 ‘여자들은 그럴 능력이 없잖아!’ 하고 대놓고 차별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역시 엄마는 위대해!’, ‘잘했어.’와 같이 겉으로는 여성을 위하는 척하지만 결국에는 차별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먼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일들이 전혀 낯설지가 않은 것을 보면 저자가 설명하는 사회적 현상이 전 세계에서 공통으로 일어나는 일임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차별적 언어를 문제 삼는 일이 우리 사회에서 ‘말꼬투리를 잡는 별 의미 없는 일’로 치부되지만 말과 용어에 숨은 의미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일상생활에서의 많은 성차별적 불이익을 해소하는 시작이라고 말하고 있다. 말과 용어는 세상을 정의하는 일이고, 차별적 언어는 ‘신체적 폭력, 임금 격차, 젠더 의학의 부재, 가사 노동 격차, 고용 차별을 비롯한 상당히 많은 불이익’을 현실에 실재하게 만들기 때문에 차별적 언어를 인지하고 고쳐야만 이런 불이익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목차

1장 조용히 하세요 10

가르치려 들지 마라│여성 사회자│당신이 언제나 옳아

2장 여자는 이미 어디에나 있잖아 22

여성의 수가 적다는 건 사실이 아니야│내용이 중요하지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여성이라는 이유로 참여 기회를 얻는 것은 모욕적이야│그러면 성소수자 할당제, 외국인 할당제를 비롯해 별의별 할당제가 다 필요하겠네│남성에 버금가는 권위 있는 여성은 없어│여성들이 거부하잖아!│이런 주제를 연구하는 여성은 드물어│여성들은 그럴 만한 능력이 없어│여성 할당제를 지키는 것은 엄청난 시간 낭비야│주체는 전부 여자잖아!

3장 당신 이름이 뭐라고? 34

소녀들│Miss.혹은 Mrs.│여성 시장│여왕, 숙녀, 여인│한 여성│핑크│엄마

4장 엄마는 위대하다! 48

여성성│딸, 언니, 손녀, 이모, 할머니│요리하다. 바느질하다. 반죽하다

5장 남자들이 놀라잖아 60

진정해│네 말이 맞긴 한데, 맞는데, 말투가 틀렸어│다 이겨야 직성이 풀려?│그러다 결혼도 못 해

6장 여성의 가장 큰 적은 여성이야 72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군!│여성 연대라는 것 참!│그녀야말로 진정한 여자군요

7장 나는 남성 우월주의자가 아니에요 82

엄마들 탓이야│여자들이 더 해│남성들도 차별받아

8장 당신은 불알 달린 여자예요 94

외로이 명령하는 남자│실패를 모르는 남자│강한 남성│여전사│‘퓨마’

9장 내가 지금 설명할게 108

여자가 할 일이 아니야│뭘 기대해, 금발이잖아│여자가 배워서 어디다 써?│잘했어

10장 칭찬한 거야 118

‘차 안에서 보내는 플레이보이의 칭찬’│그냥 좀 웃어│무슨 말을 못 하겠네│차라리 주목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건 그냥 말일 뿐이잖아 132
감사의 말 134

 

 

저자 소개 

저 : 미켈라 무르지아 (Michela Murgia)
 
작가이자 정치인. 목소리가 필요한 사람들 위해 소리높여 글을 쓰며, 사회 현상을 포착하여 풍자적으로 풀어낸다. 《레스프레소 L’Espresso》를 포함한 다수의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였으며 현재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패널로 활동 중이다. 또한 2014년부터 정치활동을 겸하고 있다. 2006년 텔레마케터의 현실을 고발한 《세상은 알아야 한다 Il mondo deve sapere》로 데뷔하였고 2008년 파올로 비...
 
역 : 최정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이탈리아어를 전공하고 이탈리아 피사 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 통번역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나 혼자 간다! 여행 이탈리아어』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 『여덟 개의 산』, 『노베첸토』, 『물이 깊은 바다』, 『소피아는 언제나 검은 옷을 입는다』, 『불만의 집』이 있다.
 
 

책 속으로

여성 사회자

남성 우월주의자가 도처에 잠재해 있는 문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으로, 자신이 성차별주의자임을 인정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꽤나 좌익 성향이 강하다. 어떻게 하면 정치적 균형을 지키며 성차별주의자임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을까? 어렵지 않다. 페스티벌이나 라디오·TV 방송, 주제별 콘퍼런스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여성을 사회자로 캐스팅하는 것이다. 그녀는 매개자로서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는데, 중앙에 앉아 무대를 이끄는 척하면서 남성 대화자에게 재치 있게 미리 합의한 질문을 한다. 남성이 무대를 독점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끼어들거나 반박해서는 안 된다. 매개자는 주최 측이 페미니스트들에게 “여성 출연자도 있잖아요.” 하고 반박할 수 있는 명분이 된다. 남성의 발언을 잠자코 듣고만 있는 역할일지라도 상관없다.
--- p.18~19

6개월 동안 매일 아침 《라 레푸블리카》와 《코리에레 델라 세라》의 기사를 보며 여성이 쓴 글에는 빨간색, 남성이 쓴 글에는 검은색 동그라미를 친 다음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고 ‘#전부남자’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각 언론사 편집장들을 태그했다. 의도는 아주 단순했다. 여성이 어디에나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여성이 각 분야에 진출해 있다는 주장은 근거 없으며 수많은 클리셰를 낳는다. 성비가 균등할 것으로 예상했던 분야에서도 불균등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지적하면(압도적 차이가 나타나기도 함) 어김없이 이런 말을 듣는다.

“이제 장벽은 없어, 당신들은 이미 모든 분야에서 자리를 꿰차고 있잖아. 경찰도 될 수 있어 (정말이야), 그러니까 더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마.”
속뜻은 이렇다.
“여성 할당제 들먹이면서 짜증 나게 굴지 마. 당신들 할머니 말이 맞을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싸움을 멈출 때야. 남녀가 평등한데 젠더 갈등이 웬 말이야.”
여기에 조롱과 협박 섞인 말투로 이렇게 덧붙이는 이도 있다.
“그렇게 따지다가는 결국 남성 할당제가 필요한 날이 오겠군.”
정말 그럴까?
--- p.22~23

요리하다. 바느질하다. 반죽하다

가정 내 여성의 전통적인 역할에서 비롯된 이러한 동사들은 실제로 요리나 바느질과 전혀 관계없는 행위에도 번번이 사용된다. 여성이 해 온 일이라는 이유로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다. 이러한 편견 때문에 벌어진 유명한 일화가 있다. 과학자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제니퍼 다우드나에게 2020년 노벨 화학상의 영예를 안긴 유전자 편집법은 이탈리아 신문에서 ‘DNA 자르고 꿰매기’로 표현됐다. 아무리 대단한 공로를 세워도 결국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여성의 본질로 여겨지는 역할, 즉 ‘주부’인 셈이다.
--- p.58

그러다 결혼도 못 해

독신이라는 망령은 여성이 부당함을 느낄 때가 아닌 갈등 상황에 놓였을 때 불쑥 튀어나온다. 만약 고분고분하던 여자아이가 갑자기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사회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나쁜 년’이 되기를 자처한다면 최악의 공포가 찾아올 것이다. 아무도 남성들이 두려움에 벌벌 떨 정도로 섬뜩해 하는 여성을 원치 않는다. 가부장적 사고방식에 따르면 여성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불행은 평생 남자 한 번 만나보지 못하고 심장이 메말라 버린 이기적인 존재로 살다가 죽는 것이다. 결국 진정한 여성성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쓸쓸히 생을 마감하게 된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 크게 외치고 싶다. 여성들이 부당함을 호소하고 항의할 때 겁먹는 남성들은 그 부당함을 결정하고 묵인한 주체들이다. 그들을 제외한 남성들은 항의하는 여성들과 마찰을 일으킨 적이 없을 뿐더러 여성들을 돕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 p.68~69

남성들도 차별받아

남성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개인적인 차별을 겪지만, 어떤 문화에서도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로 박해한 일은 없었으므로 성차별이라 정의할 수 없다. 이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은 부자보다 훨씬 더 차별 대우받을 것이고 흑인 남성은 백인 남성보다 훨씬 더 부당한 일을 많이 당할 것이다. 또한 매력적인 외모의 남성이 그 시대의 미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남성보다 성(性)적으로 훨씬 많은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p.91
 

출판사 리뷰

우리가 너무 예민한가요?
예민한 게 아니라 마땅히 불편한 겁니다.


성차별적인 말을 들었을 때 여성들이 그것에 대항하여 말하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불쾌와 불편을 이야기하는 것이 정당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예민’한 것으로 치부되는 일을 자주 겪기 때문이다. 여성이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일은 종종 평가 절하되며 목소리를 낮출 것을 권고받는다. 저자는 2013년에 선거에 출마한 적이 있는데, 당시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는 저자에게 “선거에서 남성을 승리로 이끄는 요인이 여성에게는 도리어 패배의 요인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강렬한 색상, 강한 어조를 사용하지 말 것을 조언했다고 한다. 민감한 사안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는 여성 인사들은 종종 추잡하고 예민하며 불평불만이 많고 걸핏하면 화를 내는 사람으로 비춰지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기 위해 여성들은 너무 오랜 시간을 자신을 공격적이지 않으며, 분노한 것이 아니고, 남성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가 없음을 설명해야 했다.

여성이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 매사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사고뭉치가 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여성은 비난받을까 봐 두려워 애초에 목소리를 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 마땅히 불편한 말들 앞에서조차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생각하고 자기검열을 한다. 저자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가 차별적 언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정확히 알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냥 칭찬한 거야
그거 정말 칭찬 맞나요?


『아직도 그런 말을 하세요?』에서는 50여 가지가 넘는 상황과 차별적 언어를 실제 사례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여성들은 그럴 만한 능력이 없어.” “여자가 배워서 어디다 써?”와 같은 차별이 겉으로 드러난 경우도 있지만 “엄마는 위대하다!” “당신 이름이 뭐라고?” “한 여성” 등 ‘이런 말도 성차별이라고?’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이런 경우는 남성이 여성을 칭찬하는 상황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여성의 능력이 과소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지적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현상은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남자아이들에게는 실험 키트를 선물해주고 여자아이들에게는 인형을 선물해준다. 여성에게 더 많은 집안일을 부여하여 다른 일을 접할 기회를 줄여놓고는 마치 여성들이 지적 활동보다는 집안일을 선택한 것처럼 만들어 벌인다. 이런 현상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심하게 나타나는데, 여성들이 사회활동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동안 각종 분야의 원로자리를 대부분 남성들이 꿰찬 것을 보고 역시 남성의 능력이 뛰어나다며 추켜세우는 것이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사회에는 성별의 위계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런 위계는 차별적 언어를 다시 재생산한다.

저자는 차별적 언어를 정의할 때에 중요한 것은 상황을 파악하는 일이라고 한다. 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을 구분하는 일이 너무 어렵다거나, 이런 구분을 요구하는 것에 ‘무슨 말을 못 하겠네!’라고 화를 내는 사람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에게는 복잡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상황을 구분해야 하고 그걸 이제부터라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감정을 자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또한 깨달을 것이다.

아직도 그런 말을 하세요?
무례한 이들에게 돌려주기


저자가 책을 집필하며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용어를 정의하는 일이 ‘말 꼬투리를 잡는’ ‘무의미한 싸움’으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어떤 물리적인 것보다 의미가 중요해진 시대에 차별적 불이익을 그대로 담고 있는 언어의 의미를 분명히 밝히는 것은 그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보았다. 언어를 고쳐야 현실도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해 ‘성 격차지수’는 세계경제포럼 총 156개국 중 102위, 성별 임금 격차는 OECD 국가 중 1위, 유리천장지수는 OECE 국가 중 9년째 꼴찌를 기록했다. 시민들의 전체적인 의식 수준이 올라간 것과 무관하게 여성들은 사회생활을 할수록 더 많은 차별과 혐오를 경험하고 있다. 여성들이 차별적 언어 앞에서 ‘내가 너무 예민한가?’, ‘이것도 혐오인가?’ 고민하는 이유는 여성들조차 그것이 왜 혐오인지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런 말을 하세요?』에서는 구체적 사례와 함께 간결하고 쉽게 혐오가 된 사회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인 미켈라 무르지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언어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지만 모든 것은 언어에서 시작한다.” 이제 무례한 이들에게 그들의 무례함을 돌려주자. 더는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을.
 

추천평

친밀하다 여겨지는 사이에서 이뤄지는 대화 중에도 일방적인 성별 위계가 존재한다. 그런 불편함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이 설명하는 것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아닌 먼 타국 이탈리아의 사례가 마치 내가 겪은 일마냥 낯설지 않은 것은 이런 일들이 나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 가지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여성의 웅얼거림이 말이 되도록 하는 일, 끝내 언어가 실체를 갖추도록 하는 일. 책 속의 문장처럼, 모든 것은 언어에서 시작한다.
- 이민경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