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역사문화기행 (2006~) <여행지> 494

광해군 묘

광해군 조선왕 제15대 묘호 : 광해군 (光海君) 휘: 이혼 선조와 공빈김씨의 둘째아들이다. 생애 : 어려서 생모 공빈김씨를 여의고 부왕의 냉대 속에 자랐다. 외할아버지인 김희철마저도 임진왜란중에 전사하면서 그가 기댈 곳은 없었다. 그러나 선조에 적자가 없는데다 서장남인 임해군이 포악하고 인망이 없어 서차남이었던 광해군이 선조의 정비인 의인왕후 박씨의 양자가되어 임진왜란 중에 평양에서 세자로 책봉되었다. 임진왜란 동안 세자의 몸으로 부왕을 돕고 전쟁승리에 적지않은 공을 세웠으나, 부왕의 안정은 커녕 견제와 냉대를 당해야 했다. 그후1606년 선조의 계비가 된 인목왕후가 영창대군(적자)을 낳자 광해군을 미워하던 부왕 선조는 다시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여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지만, 1608년 지병이 악화된..

덕혜옹주 묘

덕혜옹주 (德惠翁主) 墓 고종황제와 귀인 양씨의 고명딸인 덕혜옹주 (1912~1989)의 묘이다. 고종은 덕혜옹주 교육을 위해 덕수궁 (경운궁)에 처음으로 유치원을 설립할 정도로 덕혜옹주를 아꼈다. 덕혜옹주는 9세가 될때 까지 복녕당 아가씨로 불리다가 1921년 덕혜옹주로 봉해졌고 1925년 일제가 유학이라는 명분을 세워 일본으로 데려갔다. 일본에서는 영친왕 숙소에 기거하면서 학습원과 중등과정을 수료하였다. 19세에 소다케유키와 결혼하여 딸 하나를 낳았다. 1962년에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여 창덕웅 낙선재에 기거하다가 1989년 세상을 떠났다

화인원 : 이구묘

화인원 (화仁園) 영원 동쪽에 위치한 화인원은 황세손 이구 (李玖 1931~2005)의 묘이다. 영친왕과 이방자여사의 둘째 아들로 1931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1945년 광복 후 귀국하려 했으나 무산되어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생활하였다. 미국메사추세추 (MIT공과대학을 졸업하고 건축가 등으로 활동 하였으며,1959년에 미국줄리아 멀목과 결혼하였으나 1982년 이혼하였다. 1963년 대한민국국적을 얻었으며,2005년에 75세의 나이로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별세하였다.

영원 : 의민황태자 (영친왕)

영원(英園)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의민황태자 (영친왕 : 1897~1970) 와 의민황태자 비 (이방자 :1901~1989)의 합장묘이다. 의민황태자는 고종 순헌 황귀비 엄씨의 아들로써 이름은 은(垠)이며 1900년 (광무4년) 영친왕 (英親王)에 , 1907년 (융희1년)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일제의 강압으로 일본유학을 가게 되었고 , 1910년 경술국치로 융희황제 (순종)가 이왕 (李王)으로 격하되면서, 그도 황태장에서 왕세자가 되었다. 1920년 일본의 정책에 따라 일본 황족인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 왕의 왕녀 마사꼬 (이방자)와 정략결혼을 했다. 1926년 순종이 승하하자 명목상 이왕의 지위를 받았고 ,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 귀국 하려 했으나 병환이 악화되어 1970년. 73세..

순종황제 : 유릉

순종 묘호 : 순종 (純宗) 휘: 이척 1874년 (고종11년) 음력2월8일 (양력 3월28일) ~1926년 양력 4월25일)은 대한제국의 2대황제이자 조선왕조의 27대왕이다. 연호 융희제(隆熙)라고 불리기도 한다 생애 고종과 명성황후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875년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895년 모후 명성황후가 경복궁에서 암살되는소식을 접하였는데 이때 부황 고종과 함께 일본낭인과 조선인 협력자들에 의해 창덕궁 또는 덕수궁에 감금당해 있었다. 1895년 홍범14조 반포와 동시에 왕태자로 올랐고 1997년에 대한제국이 수립면서 되면서 황태자로 격상되었다. 1989년 김홍륙이 고종과 황태자였던 순종이 즐기던 커피에 다량의 아편을 넣었는데 고종은 맛이 이상함을 알고 곧바로 밷었으나, 순종은 알아차리지 못..

고종황제 : 홍릉

고종황제 생애 : 조선제 26대 묘호 : 고종 (高宗) 휘 :이휘 고종은 (1852년 (철종3년) 음력 7월25일 (양력9월8일)- 1999년 양력 1월21일)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민국 광무제 (光武帝 재위 1897~1907)이다. 연호는 건양. 광무이다 흥선대원군과 여흥부대부인의 둘째 아들로 생부 흥선대원군과 헌종의모후 조대비와의 약속으로 삼종숙인 추존왕 익종의 양자로 입양되어 조선의 왕위를 계승하였다. 1919년 1월21일에 사망하자 그가 독살당했다는 독살설이 시중에 유포되기도 했는데, 윤치호 에의해 독살설이 기록으로 전하는 가운데 2009년 일본국회 헌정자료실에서 조선총독 데하우치 마사다케의 지시로 친일파 대신들이 약을 탓다는 주장이 적혀 있는 일본 궁내성관리 구라토미 일기의 사본이 발견되었..

중명전

중명전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이 아관파천하여 러시아 공사관에 머므를 때 명하여 지은 건물이다. 바로 1896년에 착공하하였고 1900년에 완공하였다. 이건물은 당시 고종에 총애를 받넌 궁궐건축가로 활약한 러시아인 건축가 사바친 이라는사람에 의해 설계되었다 그러던 이건물이 1901년화재를 당하게 된다. 당시 화재에 대한 기록이 뚜렷이 남아있지 않아 그정도나 규모정도에 대해서는 알수는 없다. 하지만 그자리에 다시 새로운 건축물이 세워졌는데 지금과 같은 2층의 건물이었다. 아마도 화재직후 역시 사바친의 손으로 증축하여 복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건물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치욕적인 1905년 을사늑약이 이건물안에서 체결되었다는 것이다. 이 을사늑약은 1905년 11월17일에 체결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