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교육의 이해 (독서>책소개)/3.역사교육 25

식민사학의 카르텔 - 역사를 왜곡하는 자는 누구인가

책소개 사이비 역사학의 네트워크를 고발한다!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 김현구 명예교수는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라는 책을 펴내 4~6세기경 약 200여 년간 ‘왜’의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부의 임나(가야)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논리적으로 반박했다. 기존에 스에마쓰의 임나일본부설을 학문적으로 비판한 책이 없었기에 당연히 한국 사학계에서는 의미 있는 역작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재야사학자라는 이덕일은 자신의 책 『우리 안의 식민사관 』에서 김현구 교수가 ‘임나일본부설’을 추종하고 있다면서 그를 ‘살아 있는 친일파’ ‘역사를 팔아먹은 자’로 매도했다. 이에 김현구 교수는 이덕일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1심 판결에서 이덕일의 명예훼손이 인정되었지만 그 후 이덕일은 항소를 제기했고 2..

한국 실증주의의 사학과 식민사관 (2020 임종권)

책소개 저자는 『한국 실증주의 사학과 식민사관』에서 한국 실증주의 사학이 정작 실증주의 역사학의 창시자인 랑케의 실증주의 사학을 변질시킨 일본 제국주의 역사학의 사생아라는 사실을 실제 랑케의 역사학을 근거로 밝혀내고 있다. 현재 한국 사학계가 자신들을 실증주의 사학이라고 주장하면서 민족주의를 배제한 역사학을 객관적인 역사학으로 포장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실증주의 역사학의 본 모습이 식민사학임을 호도하기 위한 것임을 논증하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 23p 1장. 한국역사에서 식민사학의 문제 - 31p 2장. 랑케 실증주의 역사학의 텍스트 1. 실증주의란 무엇인가 - 49p 2. 랑케 실증주의 사학의 배경 - 70p 3. 랑케의 시대 : 독일 민족의 역사 - 94p 4. 랑케의 『강국론』 - 118p 5..

식민사학과 한국 근현대사 - 우리 역사를 왜곡한 일본 지식인들

책소개 《식민사학과 한국 근대사》는 한국과 일본의 바람직한 관계를 방해하는 잘못된 역사 인식, 이른바 ‘식민사관’을 파헤치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 근대사에 해악을 끼쳤는지를 지적하는 책이다. 이 책은 식민사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4명의 일본 지식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이들 지식인은 기쿠치 겐조, 오다 쇼고, 다보하시 기요시, 니토베 이나조로, 모두 일본 근현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거물들이다. 언론인이자 재야 사학자인 기쿠치 겐조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직접 가담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들이 언론인, 교수, 역사학자 등의 위치에서 어떻게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우리나라의 식민화를 추진했는지를 낱낱이 밝힌다. 목차 들어가는 말 제1장 기쿠치 겐조의 식민 활동과 한국 근대사 인식 제2..

고대 조선 끝나지 않은 전쟁 - 그들은 무었을, 왜 감추려고 하는가

책소개 광복 70년, 여전히 꿈틀대는 우리 안의 괴물 식민사학을 걷어내고 다시 쓰는 우리 고대사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역사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에 역사학계는 일본이 쳐놓은 식민사학이라는 덫에서 여전히 허우적거린다. 심지어 동북아역사재단이 『한국 고대사 속의 한사군』이라는 영문 책자를 출간해 한사군 한반도설을 소개하며 한반도 북부는 중국 식민지가 되고 남부는 일본 식민지가 되는 논리가 버젓이 세계에 홍보되고 있는 어이없는 형국이다. 다행인 것은 최근 식민사학에 대한 비판적인 검증과 해체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어느 때보다 한국 고대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 서 있는가’ 그 뿌리를 제대로 찾고자 하는 점에서 희망적인 ..

키쿠치 겐조, 한국사를 유린하다

책소개 ‘을미사변乙未事變’이라 불리는 사건에 가담한 살인자들 가운데 이 책의 주인공, 기쿠치 겐조菊池謙讓가 있었다. 그는 1893년 스물셋의 나이에 한국에 첫발을 디딘 후, 을미사변, 청일전쟁 등 일본이 일으킨 주요 사건에 개입했다. 특히 청일전쟁에서 종군기자로서 한국 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귀국선을 타고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한국에서 자그마치 52년간 언론인이자 재야 사학자로 활동한 대표적 ‘조선통’이었다. 기쿠치의 글은 아주 쉽고 통속적인 경향으로 대중 전파력이 강했다. 게다가 그는 을미사변 현장에 있었고, 대원군과 지속적으로 친분 관계를 갖고 접촉한 인물이었다. 따라서 그가 갖고 있던 역사의 현장성으로 인해 그의 글은 의심 없이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졌고, 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