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슈반슈타인 성
중세에 지어진 성들과는 달리 군사적인 목적은 전혀 없고, 오직 루트비히 2세가 바그너와 그의 오페라인 로엔그린에 푹 빠졌기에 취미로 지은 관저 목적의 성이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지어진 시기는 이미 증기선이 발명되고 독일 전역에 철도가 깔린 지 수십 년 뒤였다. 18세기부터 많은 성들이 저택으로 개조되어 그 목적이 전환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보통의 궁전과 달리 산 속에 이 정도 규모의 거대한 건축물을 단지 사치스러운 궁전이나 저택으로 사용하고자 건설하기란 여러모로 무리수였다. 그나마 이 성을 지을 때 들어간 경비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독일 통일 반대파였던 루트비히 2세로 하여금 빌헬름 1세의 독일 황제 즉위에 찬성해달라는 조건으로 뇌물조로 통째로 넘겨준 하노버 왕실 금고의 금으로 충당했다
루트비히 2세
루트비히 2세는 젊은 시절부터 많은 건축에 매달렸고, 건축비 지출 때문에 갈등을 많이 겪었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바그너 오페라를 모티브로 궁전 등을 건축했는데, 당연하게도 재정을 낭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광적인 취미 혼을 불사른 것이 이 건축물이었고, 개인적으로 절대왕정을 동경하던 루트비히 2세의 바람이 강하게 깃들었다. 그렇게 애정을 가진 성이지만 루트비히 2세 생전에는 완공이 되지 않았다. 국왕 본인도 이 성에서 2주 밖에 머물지 못했다. 그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완성되기 전에 정신병자 판정을 받고 강제로 퇴위해야 했으며, 3일 후에 슈타른베르거 호수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루트비히 2세 사후에 건축계획을 축소해서 현재의 성은 본래 계획의 1/3만 완공한 것이다. 덧붙여 루트비히 2세는 이 성이 관광지 따위로 전락하는 것을보고 싶지 않다고 자신이 사망하면 같이 철거하라고 명령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루트비히가 사망하고 6주 뒤부터 관광지로 개방되었다. 생전에는 재정 낭비라고 까였지만 참으로 얄궂게도 이후 왕가가 사라질 때까지 다른 성들과 합쳐 관광수입을 가져오는 짭짤한 수익원이 되었다
마리엔 다리
루트비히 2세의 어머니인 마리 여왕의 이름을 딴 마리엔 다리는 협곡 사이 92m의 높이에 놓여진 나무 다리였다. 막시밀리안 2세 때 계곡을 건너기 위해 나무로 만들었고 이후철제 프레임으로 보수되었는데, 현재는 높은 다리 위에서퓌센 지역 및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전망하기 가장 적합한 장소로 손꼽힌다.
'16.세계여행 (1987~2023) <여행지> > 10.알프스 5개국 (202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일 : 10/1 (일) 오스트리아 로이타쉬 입구에서 (0) | 2023.10.18 |
---|---|
제3일 : 10/1 (일) 호텔 -> 오스트리아 제펠트 인트롤 이동 알프스 경관 (0) | 2023.10.18 |
제3일 : 9/30 (토) 독일 퓌센지방 (0) | 2023.10.18 |
제2일 : 9/30 (토) 독일 슈트가르트 호텔로비 주변 -> 벤츠박물관 (0) | 2023.10.18 |
제1일 : 9/29 (금) 인천공항 -> 독일 프랑크 프루트 -> 호텔 (0) | 2023.1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