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본 큐슈지방 (1997~2018)<여행지>/7.남규슈지방

가고시마 명치유신관

동방박사님 2011. 3. 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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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明治維新(명치유신) ]

일본 메이지 왕[明治王] 때 막번체제(幕藩體制)를 무너뜨리고 왕정복고를 이룩한 변혁과정.

 

사이고 다카모리우에노공원 입구에 세워 진 일본 메이지유신 일등 공신인 사이고 다카모리의 동상. 사이고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하며 반대파와 전쟁을 벌였으나 패배하여 실각한 후 자살하고 말았다.

 

 

 

 

이는 선진자본주의 열강이 제국주의로 이행하기 전야인 19세기 중반의 시점에서 일본 자본주의 형성의 기점이 된 과정으로 그 시기는 대체로 1853년에서 1877년 전후로 잡고 있다. 1853년 미국의 동인도함대 사령관 M.C.페리 제독이 미국 대통령의 개국(開國) 요구 국서(國書)를 가지고 일본에 왔다. 이때 유신의 싹이 텄고, 1854년 미 ·일 화친조약에 이어 1858년에는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러시아 ·네덜란드 ·프랑스와 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이 조약은 칙허 없이 처리한 막부(幕府)의 독단적 처사였으므로 반막부세력(反幕府勢力)이 일어나 막부와 대립하는 격동을 겪었다. 그러다가 700여 년 내려오던 막부가 1866년 패배하였고, 1867년에는 대정봉환(大政奉還) ·왕정복고가 이루어졌다. 메이지 정부는 학제 ·징병령 ·지조개정(地租改正) 등 일련의 개혁을 추진하고, 부국강병의 기치하에 구미(歐美) 근대국가를 모델로, 국민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는 관주도(官主導)의 일방적 자본주의 육성과 군사적 강화에 노력하여 새 시대를 열었다.

 

 

 

이 유신으로 일본의 근대적 통일국가가 형성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성립하였고, 정치적으로는 입헌정치가 개시되었으며, 사회 ·문화적으로는 근대화가 추진되었다. 또, 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 천황제적 절대주의를 국가구조의 전분야에 실현시키게 되었다. 유신을 이룩한 일본은 구미에 대한 굴종적 태도와는 달리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해서는 강압적 ·침략적 태도로 나왔다. 1894년의 청일전쟁 도발, 1904년의 러일전쟁의 도발은 그 대표적인 예이며, 그 다음 단계가 무력으로 한국을 병합한 것이다.

 

 

 

 

 

 

 

이러한 군국주의의 종말은 1937년에는 중일전쟁을 유발하였고, 1941년에는 미국의 진주만(眞珠灣)을 공격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독일 이탈리아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였다. 그 결과 1945년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사상(史上) 최초의 원자폭탄(原子爆彈)이 투하되는 비극을 자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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