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의 일생
허준선생은 조선 중기의 의관으로 1537(중종32) ~1615(광해군7) 까지 살았다.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청원 (淸源), 호는 구암(龜巖)이다.. 무과출신으로 용천부사를 지낸 허론(許論)의 서자로 선생은 무과에 지원하지 않고 29세인 선조7년 (1574) 의과에 급제하여 내의원(內醫院)에 들어간 후 헤민서 봉사를 거쳐 전의(典醫)로 발탁되어 왕실의 진료에 많은 공적을 세웠다. 특히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허준은 선조의 피난지인 의주까지 호종(扈從 :ㅇ항의 가마를 수행함)하여 왕의 곁을 조금도 떠나지 않고 끝까지 모셔 호종공신(扈從功臣)이 되었으며, 그 뒤에도 어의로서 내의원에 게속 출사하여 의료의 모든 행정에 참여하면서 왕의 건강을 돌보았다. 그러던 중 1596년에 선조의 명을 받들어 <동의보감>을 편집하기 시작하였으나 어지러운 나라사정등으로 10여년만인 1610년(광해군2)에 완성하였다. 허준은 의인으로서 최고의 명예인 당상의 부원군과 보국의 지위를 누렸다. 그이 저서로는 <동의보감> <언해구급방><언해두장집요>등이 전한다 .
동의보감
1610년 (광해군2) 허준(許浚)이 지은 의서(醫書)로 25권 25책으로 이루어졌다.내용은 총 5개 강목으로 나뉘어있는데 내경편(內徑篇) 6권,외형편(外形篇)4권, 잡병권(雜病篇)11권. 탕액편(湯液篇)3권 침구편 (鍼灸篇)1권이다. 편집의 특징은 내경 , 외형,잡병, 탕액, 침구 등 5대 강편 아래에 질병에 따라 항(항), 목(목),을 정하고 각 항목 아래에는 그 항목에 해당되는 병론과 약방들을 출전과 함께 자세히 열거하여 그 병중에 관한 고금의 처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한데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각 병중의 항과 목깅 주로 증상을 중심으로 열거 되어 있다는 점이다. 동의보감은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뒤에 청나라와 일본에서 여러 번 번각되었으며, 최근 까짖도 민국상해석인본 (民國上海石印本) 대만영인본 등이 계속 출간 되고 있다.이는 <동의보감> 이란 책 제목처럼 동양의학의 보감이며 동양의학의 백과전서라 할수 있을 것이다.
다시 찿은 허준묘
의성 허준묘가 세상에 드러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재미 고문서연구가 이양재씨는 한 통의 간찰(편지)를 입수 했다. '7월17일' 허준배(許浚拜) , 비가 와서 길을 떠나지 못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허씨대 종회를 찿아가 종친회족보를 뒤적여 준(浚)자를 썼던 사람을 찿던중 한국전쟁이후 실전(失傳)된 허준의 묘가 '장단 하포 과암동 선죄 쌍분(雙墳)'이라는 사실을 알아 냈다. 이에 그는 허준선생의 묭지를 찿기위해 일제시대의 토지대장을 확인하던중 하포리에서 허준의 증손인 허형욱(1924~?)의 이름을 찿았고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 허씨들이 모여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엣땅을 찿았다.하지만 이미 무덤이란 무덤은 모두 도굴되었는데 그 중 한 무덤이 유독 눈길을 끌었고 무덤주병을 파던 중 두쪽으로 동강난 비석이 나왔다. 비석에 명문이 새겨져 있었고 내용은 '楊平 o o 聖功臣 o浚'이었는데 바로 ,양평군 호성공신 허준'이었다. 이렇게 허준묘가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한 명문 6자는 허준이 후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한 바램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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