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동양철학의 이해 (독서>책소개)/1.동양철학사상

춘추공양전 (공양자)

동방박사님 2021. 12. 17.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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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18년 세종학술도서로 선정된 책이다. 공자가 정리한 노나라의 사서(史書) 『춘추』는 유가 5경 중 하나로, 역대 왕과 선비들의 길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간략하게 기록된 『춘추』를 연구해 각각의 관점에서 해설한 『춘추곡량전』, 『춘추공양전』, 『춘추좌씨전』을 춘추 삼전이라고 한다. 『춘추공양전』은 ‘대일통(大一統)’,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사상을 드러낸다. 역대 왕들이 중앙 집권 강화를 위해 공양학을 적극 장려한 이유다.

목차

권1 은공(隱公)
권2 환공(桓公)
권3 장공(莊公)
권4 민공(閔公)
권5 희공(僖公)
권6 문공(文公)
권7 선공(宣公)
권8 성공(成公)
권9 양공(襄公)
권10 소공(昭公)
권11 정공(定公)
권12 애공(哀公)

원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 소개 

저 : 공양자
 
<예문지>는 『공양전』의 저자에 대해 제(齊)나라 공양자(公羊子)라고 했는데 안사고(顔師古)는 공양자의 이름을 고(高)라고 했다. 하휴(何休)는 『춘추공양전해고(春秋公羊傳解?)』에서 “그 학설이 구두로 전해지다가 한(漢)나라에 이르러 공양씨(公羊氏)와 그 제자 호무생(胡毋生) 등이 처음으로 죽백(竹帛)에 기록했다”고 했다. 서언(徐彦)은 『공양전소(公羊傳疏)』에서 그 전수 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하(子夏)가 공양고(公羊高)에게 전했고, 고가 그 아들 평(平)에게 전했고, 평이 그 아들 지(地)에게 전했고, 지가 그 아들 감(敢)에게 전했고, 감이 그 아들 수(壽)에게 전했다. 한나라 경제(景帝, 재위 BC 157∼BC 141) 시기, 수가 그 제자 제나라 사람 호무자도(胡毋子都, 호무생의 이름)와 함께 죽백에 기록했다.

그러나 이 설명은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공양전』에는 ‘자심자왈(子沈子曰)’, ‘자사마자왈(子司馬子曰)’, ‘자녀자왈(子女子曰)’, ‘자북궁자왈(子北宮子曰)’, ‘노자왈(魯子曰)’, ‘고자왈(高子曰)’, ‘자공양자왈(子公羊子曰)’과 같이 여러 전수자들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자하왈(子夏曰)’은 없다. 자하의 이름을 빌려 위상을 높이려 한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공양전』은 공양씨 집안을 주축으로 전해졌고 공양고의 현손 공양수가 제나라 사람 호무자도와 함께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

역 : 박성진

 
박성진(朴晟鎭)은 성균관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북경사범대학(北京師範大學)에서 『춘추좌전(春秋左傳)』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계속 선진양한(先秦兩漢) 시기의 고전을 연구해 왔다. 현재 서울여대 중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발표 논문으로 『좌전(左傳)』의 사상 경향, 『곡량전(穀梁傳)』 고사 초탐, 『춘추(春秋)』에 대한 『공양전(公羊傳)』 해석의 경향성, 『춘추(春秋)』의 인용과 정치화 시론, 한대(漢代) 『...
 

책 속으로

[ 경 ] 元年, 春, 王正月.
원년, 봄, 왕의 역법(曆法)으로 정월.
[ 전 ] 원년은 무엇인가? 임금이 즉위한 첫해다. 봄은 무엇인가? 1년 사계절의 처음이다.
경문에서 말한 왕은 누구인가? 주(周)나라 문왕(文王)이다. 왜 왕을 먼저 말하고 정월(正月)을 뒤에 말했는가? 왕이 정한 역법에 따른 정월이기 때문이다. 왜 ‘왕정월’이라고 했는가? 주나라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던 천하를 하나로 만들었음(大一統)을 강조한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춘추(春秋)』는 중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편년체(編年體) 사서(史書)다. 약 1만 6000여 자의 분량으로 노(魯)나라 은공(隱公) 원년(元年, BC 722)부터 애공(哀公) 14년(BC 481)까지 242년의 역사 기록이다. 이 기간을 역사에서는 춘추 시대라고 한다. 『춘추』는 또한 『춘추경』이라고도 부른다. 맹자(孟子)에 따르면 춘추 말기 공자(孔子)가 기존의 노나라 역사 기록을 근거로 정리해 『춘추』를 편찬했다고 한다. 때문에 후세 유가에 의해서 경(經)으로 높여졌다.
『춘추』가 후세에 끼친 영향은 심대하다. 맹자 이후 『춘추』는 공자의 뜻이 담긴 지고한 경전으로 추존되었다.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춘추대의(春秋大義)’에 대한 앙모와 존중은 선유들의 정신에 스며들었고 그에 부합하는 삶을 지향하게 만들었다. 조선(朝鮮)의 경우, 주지하듯 친명배원(親明排元) 정책으로부터 북벌론(北伐論) 및 위정척사론(衛正斥邪論)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고비마다 『춘추』는 정치적 명분의 기준점이 되었고, 사회의 기풍을 선도했으며, 선비의 정신을 대변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춘추』는 연도순으로 사건을 기록한다. 해마다 춘하추동의 사시(四時)가 먼저 제시되고 사시에는 월(月)과 일(日)이 배속되며 날짜는 간지(干支)로 표시한다. 사건은 조목(條目)으로 나누어 기록되어 있으며 긴 것은 47자, 짧은 것은 1자다. 『춘추』의 내용은 대부분 정치 사건인데 전쟁 및 그와 관련한 회맹(會盟) 기록이 특히 많다. 그 외에 제사나 혼상(婚喪) 그리고 일식, 월식, 지진 등 자연 현상을 기록했다. 다만 『춘추』의 기록은 지나치게 소략하다. 기록 당시 살았거나 시대적으로 근접한 사람들이야 내용을 알 수도 있었겠지만 시대가 흐른다면 더욱 해독하기 어려워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공자 후학들이 『춘추』에 대한 해설을 전수해야 했던 이유다. 『한서·예문지(漢書藝文志)』에는 당시 『춘추』를 해설한 대표적 학파로 좌씨(左氏), 공양(公羊), 곡량(穀梁), 추씨(鄒氏), 협씨(夾氏)를 수록했다. 추씨와 협씨는 사라졌고 현재는 좌씨, 공양, 곡량 세 학파만이 전승된다. 이들 세 학파의 해설서인 『좌씨전(左氏傳, 간칭 『좌전』)』, 『공양전(公羊傳)』, 『곡량전(穀梁傳)』을 ‘춘추삼전(春秋三傳)’이라 한다.
삼전을 대별하면 『좌전』은 사학적 성격이 강하고, 『공양전』과 『곡량전』은 경학적 성격이 강하다. 『공양전』은 『춘추』의 개별 기록에서 문자의 운용에 따른 의미 차이를 밝히고, 비교와 귀납을 통해 그 서법의 규칙을 밝혀 『춘추』의 대의를 설명한다. 때로는 한 번의 의론을 통해 여러 사례를 포괄하기도 한다.
『춘추』는 근엄하고 난해하다. 삼전은 춘추학의 원점(原點)이자 정점(頂點)이다. 삼전을 모두 보지 않고는 『춘추』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공양전』은 『춘추』의 오의(奧義)를 풀기 위해 경문에 집요하게 매달린다. 이런 집요한 천착에서 공도 과도 나왔다. 비록 『공양전』이 역사 고증에 소홀하고 이로 인한 억측이 적지 않지만 경문에 대한 훈고와 조례를 밝힌 공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공양전』이 전해진 지 이미 2000여 년이 되었다. 그동안 『공양전』과 공양학은 황제를 위해 사용되기도, 중앙 집권을 유지하는 데 동원되기도 했다. 유신을 주장하는 자들에게는 변법개제가 공자의 뜻이라는 논거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런 역정(歷程)에서 『공양전』과 공양학은 중국 정치사 학술사 사상사 경학사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경학의 시대는 끝났지만 『공양전』은 우리에게 과거의 중국과 미래의 중국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