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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전기

동방박사님 2022. 2. 2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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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신의 축복과 인간의 탐욕이 공존하는 도시,
예루살렘의을 향한 끝없는 욕망의 서사


예루살렘 땅의 모든 역사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 땅의 장대하고 성스러운 역사를 비롯하여 그곳에 살고 배회하며 소유하려 들었던 수많은 개인과 민족의 역사를 담았다. 이 책은 단순히 종교나 분쟁에만 초점을 맞춘 책이 아니며 목적론적 서술로 모든 역사가 필연적이었음을 이야기하는 책도 아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전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예루살렘에 대한 가장 깊고 넓은 이해를 제공한다.

예루살렘을 전방위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왜’라는 질문에 가장 적절하고 명쾌한 해답을 내려준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역사는 곧 세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현재 자행되는 국제 사회의 분쟁과 테러, 갈등과 번민이 거의 모두 예루살렘에서 기인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예루살렘은 세계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예루살렘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국제 사회에 대한 올바른 식견으로 이어진다. 예루살렘은 더 이상 성서 속에서만 성스럽게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21세기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그 땅은 여전히 살아 숨 쉬며 말을 거는, 성스럽고도 처절한 도시로 존재한다.

 

목차

들어가는 글
옮긴이의 글

프롤로그 _ 예루살렘의 새벽

제1부 유대교
1장 다윗의 세계
2장 작은 자의 큰 성공
3장 왕국과 성전
4장 유다의 왕들
5장 바빌론의 창녀
6장 페르시아인들
7장 마케도니아인들
8장 마카베오 가문
9장 로마의 등장
10장 헤롯 왕조
11장 예수 그리스도
12장 헤롯 왕조의 최후
13장 예루살렘의 죽음

제2부 이교
14장 계속되는 유대전쟁

제3부 그리스도교
15장 비잔티움의 전성기
16장 비잔틴의 쇠퇴

제4부 이슬람
17장 아랍의 정복이 시작되다
18장 우마이야조, 성전의 회복
19장 압바스조, 원거리 군주들
20장 파티마조, 관용과 광기

제5부 십자군
21장 순례의 길을 떠난 군사들
22장 우트르메르의 부흥
23장 우트르메르의 황금시대
24장 교착상태
25장 문둥이 왕의 용기
26장 살라딘 이야기
27장 제3차 십자군
28장 살라딘 왕조

제6부 맘루크조
29장 술탄의 노예
30장 맘루크조의 쇠퇴

제7부 오토만제국
31장 술레이만
32장 신화와 메시아
33장 가문들

제8부 제국
34장 예루살렘의 나폴레옹
35장 신낭만주의
36장 알바니아 정복
37장 복음주의자들
38장 새로운 도시
39장 새로운 종교
40장 아랍 도시, 제국 도시
41장 러시아

제9부 시온주의
42장 시온, 그들의 나라를 위하여
43장 예루살렘의 우드 연주자
44장 세계전쟁
45장 밸푸어 선언
46장 크리스마스 선물
47장 승전국들과 전리품
48장 영국의 위임통치
49장 아랍의 반란
50장 더러운 전쟁
51장 유대의 독립, 아랍의 재앙
52장 종파의 분열
53장 6일 전쟁, 역전과 상실

에필로그 _ 예루살렘의 아침

부록(가계도, 지도,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 :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Simon Sebag Montefiore)
 
1965년 출생으로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예카테리나 대제와 포템킨Catherine the Great and Potemkin』으로 새뮤얼 존슨상, 더프 쿠퍼상, 마시 전기문학상의 최종 후보명단에 올랐다. 『스탈린 : 붉은 짜르의 궁전Stalin : The Court of the Red Tsar』으로는 2004년 영국출판대상 ‘올해의 역사책상’을, 또 다른 저서 『젊은 스탈린Young Stalin...

역 : 유달승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동지역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이란 테헤란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2000년에는 미국 하버드대학교 중동연구센터(Center for Middle Eastern Studies)에서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중동은 불타고 있다』, 『이슬람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 등이 ...

 
 

책 속으로

우리는 또한 이런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장소 가운데 왜 하필 예루살렘인가? 그곳은 지중해 해변의 무역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물도 부족하고 여름에는 태양이 작열하며 겨울에는 바람이 살을 에고, 돌산들은 험해 생활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성전의 도시로 선택한 이유는 어느 정도 결정적이자 사사로운 면도 있고 생태적이자 진화적인 면도 있다. 즉 그 도시가 그만큼 오랫동안 성스러웠기 때문에 신성이 점점 더 강화된 것이다. 성스러움에는 영성과 신앙뿐 아니라 합법성과 전통도 요구된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급진적인 예언자는 이전 수 세기에 대해 설명해야 하고 용인된 거룩함의 언어(앞서 계시를 내렸던 예언자들이 사용한 언어)를 사용해 이미 오랫동안 신성시되어온 장소에서 자신의 계시를 정당화할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p.12, 들어가는 글

3세기 동안 지속된 새로운 ‘암흑기’에 히브리인들은 유일신을 숭배하며 좁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이스라엘 왕국을 세운, 기이하고 작은 민족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은 세계의 창조, 자신들의 기원 그리고 그들과 신과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들에 나타나 있다. 그들은 그 구전 기록들을 대물림했으며, 이후 신성한 히브리 문자로 기록했다. 그것이 훗날 펜타튜크Pentateuch, 즉 모세5경(구약 성서 맨 앞의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말함)으로 종합되었으며, 유대인의 경전 《타나크Tanakh》의 첫 번째 부분이 되었다. 성서는 이 세상 최고의 책이 되었지만 하나의 문서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시대에 알려지지 않은 필자들이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기록하고 편집한, 뒤얽힌 텍스트들의 신비로운 도서관이다. ---pp.57~58, 제1부 유대교

당시에는 그가 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건지 아무도 이유를 몰랐다. 그는 끔찍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많은 남자들이 그렇듯 어머니 헬레나를 숭배했는데, 헬레나는 초기 그리스도교 개종자였다. 그의 개인적 개종이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바울의 개종만큼이나 극적이었다면 그의 정치적인 그리스도교 수용은 점진적이었다. … 그러나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은 필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순전히 콘스탄티누스의 개인적 변덕에 따른 것이었다. 312년 당시에는 마니교Manichaenism와 미트라교Mithraism가 그리스도교보다 더 인기가 있었다. 콘스탄티누스는 그중에 한 가지를 쉽게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유럽은 오늘날 마니교나 미트라교 국가가 돼 있을지도 모른다. ---p.258, 제3부 그리스도교

무함마드는 영감이 뛰어난 몽상가였다. 그는 쉽게 습득 가능한 의식들과 삶과 죽음에 관한 규정들을 통해서 보편적 계시와 평등과 정의의 가치만이 아니라 순수한 삶의 미덕을 대가로 한 유일신에 대한 복종(이슬람)을 설교했다. 그는 개종자들을 환영했다. 성서를 존중했으며 다윗과 솔로몬, 모세와 예수를 예언자들로 간주했다. 그러나 그의 계시는 앞선 계시들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의 운명에 대한 계시도 중요한데 무함마드는 그가 심판, 마지막 날 또는 그 시간이라 부른 계시를 강조했고, 그 계시가 곧 실현될 것이라는 긴박감으로 초기 이슬람에 역동성을 불어넣었다. 《쿠란》은 “오로지 신만이 아시는 심판이 가까웠음을 무엇이 그대로 하여금 알게 하리오?”라고 이야기한다. 모든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문헌은 그것이 오직 예루살렘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p.297, 제4부 이슬람

십자군은 한 사람에게서 나온 생각이었다. 1095년 11월 27일,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클레르몽에서 유력자들과 일반 백성들을 모아놓고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성묘교회를 해방시키자는 연설을 했다. 우르바누스는 가톨릭교회의 권력과 명성의 회복을 자기 일생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리스도교와 교황청을 부활시키기 위한 성전의 새로운 논리를 개발했고 죄의 구속을 대가로 이교도 청산을 합리화시켰다. 이는 무슬림 지하드를 그리스도교식으로 변형한 미증유의 방종이었지만 예루살렘에 대한 대중적 숭배와 잘 들어맞았다. 종교적 광기의 시대, 기적의 증표의 시대에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도시였으며 최고의 성지인 동시에 천상의 왕국으로 여겨졌다. 그러면서도 설교, 순례자들의 이야기, 예수 수난극, 그림, 유물 등을 통해 환기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친숙한 곳이었다. 그러나 우르바누스는 또한 순례자들의 학살과 투르크멘의 악행을 상기시키며 성묘교회의 안전에 대한 염려에 불을 지폈다. ---p.355, 제5부 십자군

11월 9일, 밸푸어는 선언문을 발표했고 로스차일드 경의 이름을 기입했다. 선언문의 내용은 이러했다. “여왕 폐하의 정부는 유대인 자치지역을 팔레스타인에 건설하는 것을 환영한다. 기존의 비유대인 사회들의 시민적, 종교적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어떤 것도 행하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한다.” 영국은 나중에 아랍인들에게서 냉소적인 배신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영국은 샤리프, 시온주의자들, 프랑스에게 동시에 팔레스타인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그것은 ‘위대한 아랍의 반란Great Arab Revolt'이라는 신화의 일부가 되었다. 그것은 분명 냉소적이었으나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에게 한 약속은 모두 짧은 기간에 얻어낸 결과였고 신중치 못한 것이었으며 전시의 긴급한 정치적 편의였다. ---p.686~687, 제9부 시온주의

1993년 이후 협상의 역사, 그리고 점잖은 말과 불신과 폭력의 행동 사이의 정신적 차이는 양쪽 모두 예루살렘을 영구히 공유하기 위해 필요한 타협을 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가장 좋은 시절이라도 예루살렘에서 천상, 민족, 감정의 화합은 미로와 같은 퍼즐이다. 20세기에 예루살렘에 대한 40여 개가 넘는 계획들이 있었으나 모두 실패했고 현재 성전산의 공유에 관련해서만 최소 13개의 서로 다른 모델들이 있다.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은 바라크와 손을 잡고 배후에서 실력을 행사하는 네타냐후를 압박해 예루살렘 정착촌 건설을 일시적으로 중단시켰다.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에서 가장 쓰라린 순간을 대가로 치르고 오바마는 결국 양측을 대화에 나서게 만들었으나 회담의 진행은 얼음처럼 냉랭했고 또한 잠깐에 그쳤다.
---pp.843~844, 에필로그
 

출판사 리뷰

“신의 축복과 인간의 탐욕이 공존하는 도시”
예루살렘의 전 생애를 파헤치는 최초의 시도!


하나의 신이 사는 집, 두 민족의 수도, 세 종교의 사원. 이와 같은 수식어는 지구상에서 단 하나의 도시, 오직 예루살렘에만 붙일 수 있다. 그 땅은 오랜 역사를 지나면서 단 한순간도 지속적인 평화를 가진 적이 없으며 파괴와 건설을 수없이 반복해왔다. 예루살렘을 소유한 사람들은 영원히 그 땅을 갖고 싶어 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빼앗고 싶어 했다. 그렇게 여러 번 주인이 바뀌어오면서 예루살렘은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가장 분쟁이 많은 도시로 형성되었다. 그런데 왜, 그 땅의 운명은 그래야만 했는가? 무엇이 그 땅을 그토록 소유욕에 불타는 도시로 만들었던 것인가?

신간 《예루살렘 전기》(Jerusalem : The Biography) 는 예루살렘 땅의 모든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 땅의 장대하고 성스러운 역사를 비롯하여 그곳에 살고 배회하며 소유하려 들었던 수많은 개인과 민족의 역사를 담았다. 이 책은 단순히 종교나 분쟁에만 초점을 맞춘 책이 아니며 목적론적 서술로 모든 역사가 필연적이었음을 이야기하는 책도 아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전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예루살렘에 대한 가장 깊고 넓은 이해를 제공한다.

예루살렘을 전방위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왜’라는 질문에 가장 적절하고 명쾌한 해답을 내려준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역사는 곧 세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현재 자행되는 국제 사회의 분쟁과 테러, 갈등과 번민이 거의 모두 예루살렘에서 기인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예루살렘은 세계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예루살렘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국제 사회에 대한 올바른 식견으로 이어진다. 예루살렘은 더 이상 성서 속에서만 성스럽게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21세기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그 땅은 여전히 살아 숨 쉬며 말을 거는, 성스럽고도 처절한 도시로 존재한다.

어디에도 없었던 이야기,
사실 그대로의 예루살렘을 서술하다


저자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Simon Sebag Montefiore는 유대인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예루살렘을 배회해오면서 가장 사실로서의 역사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저자는 또한 예루살렘과 유대인을 위해 힘쓴 시온주의의 선구자 모지스 몬티피오리 경의 후손이기도 하다. 따라서 저자는 어쩌면 예루살렘의 역사를 기술하는 데 가장 적합하고 유일한 서술자일 것이다.
몬티피오리는 수많은 예루살렘 관련 책을 보았지만 사실에 가장 가깝고 예루살렘의 속살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책을 찾을 수가 없어 자신이 직접 펜을 들었다고 한다. 책을 쓰기로 결심한 후에는 오랜 시간 방대한 자료조사를 거쳤다. 교수, 고고학자, 가문들, 정치인들을 일일이 만나 이야기를 나눴으며 발이 닳도록 고고학 유적지를 찾아다녔다. 그 결과 그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또는 한 번도 활용된 적이 없던 자료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한 모든 내용이 이 책에 고스란히 잘 버무려져 있다.
저자는 일생에 걸쳐 이 책의 집필을 준비해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고백한다. 지상과 천상에 존재하며 신앙과 정서에 의해 지배되는, 그 어떤 말로도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예루살렘은 그의 손끝에서 재탄생되었으며 어느 때보다도 생생하게 표현되었다.

아브라함의 세 종교,
그 땅을 향한 욕망의 역사를 펼치다


이 책 《예루살렘 전기》에서 우리는 긴 호흡으로 펼쳐지는 역사 가운데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세 종교(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기원과 탄생, 전개를 만나게 된다. 하나의 신을 모시지만 서로 다를 수밖에 없으며, 같은 장소를 가리키지만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같은 곳에 있지만 마치 자기들 종파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서로를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의 치우침도 없이 드러나고 있다.
아브라함의 세 종교는 모두 예루살렘을 소유한 역사가 있다. 그러나 서로 뺏고 빼앗기기를 반복해왔기 때문에 어떤 종교가 그 땅의 실소유주인가는 명확하지 않다.
유대인은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예루살렘에 거주해왔다. 그들은 신의 축복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었으며 이 믿음은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분할로 본격적으로 해외로 흩어지게 된다. 그러나 디아스포라(팔레스타인이 아닌 다른 지역에 살면서 유대교적 종교규범과 생활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의 거주지)에 살면서도 그들은 메시아가 시온에 올 것이라는 믿음을 더욱 확고히 했으며 19세기 후반 드디어 예루살렘으로의 재입성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땅에 마침내 자신들의 나라를 세웠다.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시작되었다. 예수를 신으로 믿느냐 아니냐 하는 논란 등으로 많은 종파가 생겨나긴 했지만 비잔틴제국의 국교로 선정되면서 평탄한 미래를 맞는 듯했다. 후에 이슬람의 지배로 탄압의 역사를 걸었던 그리스도교는 서구 사회에서 시작된 십자군전쟁으로 반등을 노렸다. 그러나 십자군전쟁은 시간이 거듭되면서 애초의 정신을 잃어가고 갈등의 씨앗이 되고 만다.
이슬람은 무함마드의 창시로 시작되었다. 예루살렘은 그가 신의 계시를 받기 위해 하늘로 승천한 곳이었다. 따라서 이슬람에게 예루살렘은 성지였고 그곳을 지켜야만 했다. 세력을 확장하며 1,500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살아온 이슬람 아랍인, 즉 팔레스타인인들이 시온주의라는 맹랑한 믿음을 가지고 자신들의 땅을 침략해오는 유대인들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팔레스타인인들은 저항을 시작했고, 둘 사이의 불편한 역사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세 종교와 함께 진행되어온 예루살렘의 역사는 무척 화려하고 복잡하다. 그것은 신에 대한 믿음 이상이었고 어쩌면 신앙은 정복을 위한 도구였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진실이든 간에 그들이 지나온 것은 투쟁의 역사이며 피의 역사, 눈물의 역사임이 틀림없다. 이는 예루살렘을 막연히 종교의 아름다운 성지쯤으로 생각했던 이들에게는 어쩌면 충격으로 다가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실상을 파악할 때 신앙은 더욱 확고한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오늘 아침의 예루살렘 이야기까지,
반복되는 역사의 끝나지 않은 마침표


《예루살렘 전기》는 21세기 예루살렘까지로 이야기를 넓혔다. 박제된 역사를 넘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따끈따끈한 현황까지 이 책은 예루살렘의 오늘 아침, 아니 다가올 내일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1917년 영국 내각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고향’을 건설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밸푸어 선언이 이루어지고 난 후 예루살렘에서는 소유를 위한 본격적인 현대적 분쟁이 시작된다. 그 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는 중동전쟁과 인티파다가 발생했다.

1993년 이후로는 길고 긴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 긴 협상 가운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둘 중 어느 하나도 예루살렘을 공유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이 나선 양측의 회담도 성과는커녕 냉랭한 기운만이 감돌았을 뿐이었다. 예루살렘의 현재는 과거 헤롯 시대, 십자군 시대, 영국령 예루살렘 시대처럼 똑같이 복잡하고 미묘하다. 과연 예루살렘에 평화라는 것이 도래할 것인지, 몇 십 년 후에도 예루살렘이 존재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책을 번역한 한국외국어대학교 유달승 교수는 옮긴이의 글에서 이 책은 어쩌면 누군가를 무조건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잘못된 사랑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수천 년을 지속해온 그 땅에 대한 열망과 집착. 그것은 앞으로도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을 것이며 사그라지지 않는 욕망으로 국제 사회를 지배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예루살렘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며 예루살렘이 세계의 중심인 이유다. 예루살렘은 오늘도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