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폭력연구 (독서)/6.홀로코스트

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 (2020) - 악은 어떻게 조직화되고 보편화되는가

동방박사님 2023. 7. 8.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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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악은 어떻게 조직화되고 보편화되는가”
아우슈비츠 ‘생존자’가 아닌 ‘가해자’의 삶을 중심축으로
거대 기업과 나치의 부당 거래를 밝히다!


다시, 아우슈비츠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금껏 수많은 영화와 책들이 나치 독일 치하에서 벌어진 광기와 폭력의 역사를 복기하고자 시도해 왔다. 그 과정에서 엘리 위젤Elie Wiesel이나 프리모 레비Primo Levi 같은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주목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는 독특하게도 생존자가 아닌, 가해자의 행적을 좇는다. 저자 퍼트리샤 포즈너는 우연히 아우슈비츠에 주임 약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그에 대한 정보를 수년에 걸쳐 수집하며 치열하게 파고들었다. 이 책은 그 결과물로, 평범한 제약 회사 직원이었던 빅토르 카페시우스가 아우슈비츠의 주임 약사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철저한 사실관계에 근거하여 추적했다. 유명 제약 회사 바이엘에서 일하던 “사람 좋은” 영업 사원 카페시우스가 어떻게 아우슈비츠에서 끔찍한 범죄를 죄의식 없이 저지를 수 있었을까? 자연스레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 떠오르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아우슈비츠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져 보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저자는 카페시우스라는 가해자의 삶을 중심축으로, 거대 화학 회사 이게파르벤과 나치 독일이 어떻게 아우슈비츠를 만들어 냈는지 밝혀낸다. 이게파르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와 손을 잡고 아우슈비츠를 탄생시켰다. 죽음의 수용소는 단순히 히틀러로 대표되는 광기 어린 한 사람과 그를 따르는 광신도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복합기업 이게파르벤과 나치의 이해관계 속에서 인간성이 말살된 수용소가 생겨났고, 그 아래에서 카페시우스 같은 개인이 부단히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이 모든 것이 맞물려 악이 조직화되고 보편화되는 과정을 그려 냈다. 그런가 하면 책의 후반부는 종전 이후의 독일에서, ‘악’을 스스럼없이 자행한 이들을 법정에 세워 역사의 심판대에 올리는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 준다.

목차

서문
저자 서문

Chapter 1. “약사 삼촌”
Chapter 2. 나치, 파르벤과 결탁하다
Chapter 3. 이게?아우슈비츠
Chapter 4. 카페시우스, 아우슈비츠에 입성하다
Chapter 5. 아우슈비츠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Chapter 6. 조제실
Chapter 7. “악마를 보았다”
Chapter 8. “바이엘표 독약”
Chapter 9. “알 수 없는 냄새”
Chapter 10. 헝가리계 유대인들
Chapter 11. 금니
Chapter 12. 끝이 임박하다
Chapter 13. “자동 체포”
Chapter 14. “제가 무슨 죄를 저질렀죠?”
Chapter 15. 모두가 모르쇠
Chapter 16. 새로운 시작
Chapter 17. “신 앞에 맹세코 결백합니다”
Chapter 18. “악의 평범성”
Chapter 19. “제게는 명령을 거부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Chapter 20. “살인 가해자”
Chapter 21. 무감각한 관료들
Chapter 22. “이건 웃을 일이 아닙니다”
Chapter 23. 최종 판결
Chapter 24. “그냥 악몽을 꾼 거야”

에필로그
감사의 말
자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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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 : 퍼트리샤 포즈너 (Patricia Posner )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미국 마이애미비치에 살고 있다. 지난 30년간 베스트셀러 작가인 남편 제럴드 포즈너를 도와 『멩겔레: 완전한 이야기Mengele: The Complete Story』를 비롯한 열두 권의 논픽션 저서를 집필했지만 공동 저자로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1950년대 런던의 보수적인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퍼트리샤 포즈너는 반복되는 유대인 괴롭힘의 피해자였다. 공립학교에 다니면서 유대인에 대한 조롱을...
 
역 : 김지연
 
KAIST 경영과학과 졸업 후 미국 듀케인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를 졸업하였다. 다년간 번역가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더미를 위한 밀레니얼 세대 인사관리-더미를 위한》, 《발견의 시대: 신 르네상스의 새로운 기회를 찾아서》, 《영향력과 설득: 말솜씨가 없어도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이 있다.

책 속으로

“카페시우스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였어요. 저의 아버지와 친구였죠.” 롤프가 말했다. 롤프가 그 말을 하던 순간이 나는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난다. 그 말을 듣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우슈비츠에 약사가 있었다고?’ 지난 몇 년 동안 때로는 단독 저자로 때로는 제럴드와 공동 저자로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면서 언젠가는 카페시우스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열망은 점점 커져만 갔다. 카페시우스가 독일 최대의 제약 회사와 더불어 아우슈비츠에서 저지른 만행이 상대적으로 더 악명 높은 다른 나치들에게 묻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열망에 기름을 부었다. 수년에 걸쳐 자료를 수집하는 동안 비틀린 의학과 탐욕에 얽힌 엄청난 이야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31년 전에 롤프 멩겔레가 했던 말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여기까지 왔다. 지금부터 들려줄 이야기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역겹고 때로는 분노를 참을 수 없게 만드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에 관한 이야기다.
--- p.15, 「저자 서문」 중에서

카페시우스 같은 약사가 아우슈비츠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이해하려면 우선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어떻게 생체 실험과 강제 노역과 집단 말살을 통한 이익 창출 조직이 되었는지, 즉 나치와 독일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던 이게파르벤 사이에서 어떻게 치명적인 군사적-산업적-정치적 협력 관계가 태동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이유를 장기전에 필요한 천연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이 굳은 신념은 이미 집권 전에 독일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핵심 산업 기반은 사실상 마비 상태였다. 영국군이 해상을 봉쇄해 고무, 원유, 철강, 질산염의 보급로를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화약부터 원료에 이르기까지 독일은 만성적인 물자 부족에 시달리며 전장에서도 휘청거렸다. 궁극적으로 독일의 전의를 꺾은 것은 민간에 광범위하게 퍼진 기아 사태와 원자재 부족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군인으로서 훈장까지 받았던 히틀러는 독일이 군사물자를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파르벤의 기술력은 히틀러에게 독일이 원유와 고무와 질산염을 수입하기 위해 더 이상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나라를 재건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를 제공했다.
--- p.26~27, 「Chapter 2. 나치, 파르벤과 결탁하다」 중에서

파르벤 임원진이 수감자들에 대한 나치의 부당한 처우에 불만을 제기한 건 인도주의적 관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건장한 독일인 노동자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유대인 수감자는 세 명이나 필요하다는 사실이 못마땅할 뿐이었다. 이에 파르벤 내부에서는 지지부진한 공사 진행 상황을 타개할 대책을 놓고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파르벤 임원진은 만약 합성고무 및 석유 공장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군대에 원활하게 물자를 조달하지 못할 경우에 나치가 파르벤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돌릴 것을 두려워했다. 불가피한 전시 사업에 쏟아질 히틀러와 힘러의 분노를 기꺼이 감내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동부 전선에서 치열한 전투가 일 년째 계속되던 1942년 7월, 파르벤 이사진은 기업 역사상 도덕적 파산으로 길이길이 남을 만한 제안서를 승인하고야 말았다. 이게-아우슈비츠의 노동력 문제를 타개할 최선의 해결책으로, 2,000만 달러를 들여 자체 강제수용소를 건설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당시 짓고 있던 공장 부지와 인접한 아우슈비츠 수용소 바로 동쪽이 새로 들어설 수용소 부지로 선정됐다. 제3제국의 노동부 장관이었던 에르네스트 “프리츠” 자우켈은 파르벤의 이 같은 신사업 계획을 “최소 비용으로 최대한도까지 [수감자를] 착취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며 바로 승인했다.
--- p.38, 「Chapter 3. 이게-아우슈비츠」 중에서

카페시우스가 젊은 시절 파르벤/바이엘에서 근무했던 때에 루마니아 전역을 누비며 스승이나 친구들의 편견을 수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당시 카페시우스 같은 독일인들이 자라고 교육받고 살아가고 일했던 문화적·역사적 맥락을 보면 유대인에 대한 경멸적인 시선이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카페시우스는 훗날 이렇게 주장했다. “저는 결코 유대인에게 적대적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진심이야 알 수 없지만 카페시우스에게는 사적인 감정보다 일이 우선이었다. 파르벤 입사 초기에 카페시우스에게는 유대인 상사 두 명이 있었지만 그들은 1939년 뉘른베르크법(나치 독일의 반유대주의 법. 독일 내 유대인의 독일 국적과 공무담임권을 박탈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_옮긴이) 때문에 회사를 떠나야 했다. 카페시우스가 파르벤의 영업 사원으로서 응대했던 의사, 약사, 임상의, 공장주 가운데 상당수가 유대인이었다. 그중에 누구도 카페시우스에게서 반유대주의적 성향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 p.51~52, 「Chapter 4. 카페시우스, 아우슈비츠에 입성하다」 중에서

카페시우스는 잠깐 폴을 쳐다보다가 말을 걸었다. “자네 혹시 약사 아닌가?”
“네, 맞아요. 약사입니다.” 폴이 대답했다.
“혹시 오라데아에서 약국을 운영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카페시우스는 폴에게 오른쪽으로 가라고 손짓했다. 당시만 해도 폴은 카페시우스의 그 찰나의 손짓으로 자신이 목숨을 부지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카페시우스도 물론 처음에는 승강장에 서서 사람들의 생과 사를 결정하는 일을 피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에 한 인간의 생과 사를 결정하는 일은 갈수록 묘한 쾌감을 선사했다. 아우슈비츠에서 신입 수감자는 대부분 도착 즉시 죽을 운명이었다. 그러니 가끔씩일지라도 신 놀음을 할 수 있는, 누군가의 목숨을 구제할 수 있는 능력은 그야말로 실질적인 힘이었다. 비록 수감자 입장에선 당장 가스실행만 피했을 뿐 끔찍하기는 매한가지인 파리 목숨 신세였지만 말이다.
--- p.90~91, 「Chapter 7. 악마를 보았다」 중에서

하루는 프로코프가 카페시우스와 함께 조제실 다락방에 있을 때였다. “카페시우스는 트렁크 쪽으로 걸어가곤 했습니다. 그 안에는 치아와 턱뼈로 가득했는데 잇몸이며 뼈가 아직도 붙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모든 것이 부패하면서 지독한 악취가 났습니다. 섬뜩한 광경이었습니다.”
프로코프는 카페시우스에게 이 끔찍한 수집품을 치과에 보관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카페시우스느 프로코프의 말을 무시한 채 트렁크 안으로 몸을 숙였다. “그는 맨손으로 끔찍한 악취를 풍기는 내용물을 헤집기 시작했죠. 그러더니 틀니 하나를 꺼내 그 가치를 가늠하는 겁니다. 저는 그 자리를 도망치다시피 해서 빠져나왔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프로코프가 치아로 가득한 트렁크를 점검할 때마다 “내용물은 나날이 줄어들었다”.
이 금니 절도 행각에 카페시우스의 친구였던 아우슈비츠의 치과 의사 샤츠 박사와 프랑크 박사도 가담했다. 카페시우스는 이렇게 약탈한 금이 담긴 조그만 상자 수십 개를 빈에 사는 여동생에게 보내는 역할을 담당했다. 지시 사항은 간단명료했다. ‘전후 혼란기에 금이 유일한 통용 화폐가 될 경우를 대비해 전부 안전한 장소에 숨겨 둘 것.’
--- p.138, 「Chapter 11. 금니」 중에서

요아힘 퀴글러 검사는 법정에서 카페시우스를 향한 이 증언들이 왜 유독 강력하게 유죄를 입증해 주는지 그 이유를 설명했다. “카페시우스를 둘러싼 이 상황에서 정말 끔찍한 부분은 희생자들이 그저 이름 모를 불특정 집단이 아니라 그전부터 사적으로나 업무적으로 알고 지낸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카페시우스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고 아우슈비츠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카페시우스를 믿었던 겁니다. 도대체 이 카페시우스 박사는 어떤 인간이기에 손짓 한 번으로 왼쪽에 보내 버린 사람들이 한두 시간 뒤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오랜 친구와 직장 동료를,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을 친근한 미소와 다정한 말로 안심시켜 놓고서 아무렇지 않게 죽음의 길로 보내 버릴 수가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어느 정도의 정서적 잔인성과 악마 같은 가학성과 무자비한 냉소주의를 지녀야 이 괴물처럼 행동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 SS 최상급 돌격 지도자가 그가 죽인 수많은 사람들의 일부인 여기 극소수의 사람들을 살리는 데 필요했던 건 고작 말 한마디, 손짓 한 번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 p.272~273, 「Chapter 22. “이건 웃을 일이 아닙니다”」 중에서
 

출판사 리뷰

“나에게서 악마를 보게 될 것이다!”
양심이나 도덕성에 구속되지 않는 상황에서
인간과 기업은 과연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가


1944년 5월, 아우슈비츠에 막 도착한 루마니아계 의사 베르너의 이야기로 책은 시작된다. 열차를 타고 가족과 함께 끌려온 베르너 앞에는 눈부신 조명을 배경으로 나치 친위대 장교들이 도열해 있었으며, 경비견들이 사납게 짖고 있었다. 베르너는 곧 소스라치게 놀라고 마는데, 예전에 같은 동네에서 약국을 했던 카페시우스를 보았기 때문이다. 친근한 “약사 삼촌”은 어느새 나치 장교가 되어 있었다.

평범한 약사가 어쩌다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의 생사를 결정하는 나치 장교가 되었을까? 첫 장부터 흡입력 있는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 모든 것이 허구가 아니라는 사실이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집단 학살과 생체 실험, 수감자를 대상으로 한 비양심적인 절도 등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뤄지는 아우슈비츠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카페시우스는 이 모든 죄를 성실히 저지른 사람이었다. 그는 수감자들에게 필요한 치료약을 고의적으로 내주지 않았고, 가스실에 쓰이는 치명적인 화학물질인 치클론 B를 관리 감독했으며, 임산부와 어린이를 대상으로 아무런 죄의식 없이 생체 실험을 했다. 심지어 아우슈비츠 희생자의 사체에서 채취한 금니를 빼돌리기까지 했다. 인간이 양심이나 도덕성에 구속되지 않는 상황에서 과연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된다.

또한 이 책은 카페시우스라는 한 개인의 타락에만 집중하지 않고, 일개 약사가 원하는 대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시스템, 즉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전말을 파헤친다. 애초에 나치는 유대인을 격리 수감하고, 전쟁에 쓸 군수물자를 원활히 생산할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수용소를 건설했다. 이 과정에서 이게파르벤이라는 독일의 거대 화학 회사가 매우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추가로 건설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은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아스피린’과 ‘비판텐’으로 유명한 제약 회사 바이엘의 전신이 이게파르벤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경악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수년간 수집한 자료와 기록을 토대로, 극우 민족주의자 히틀러와 이익을 최대로 우선시했던 이게파르벤이 어떤 거래를 했으며, 이것이 역사에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 낱낱이 밝힌다.

역사 속에서 잊히기를 바라는 전범자와
이들을 정의의 심판대에 끌어올리려는 자들의
치열한 법정 싸움을 읽어 내다!


종전 이후에 카페시우스 같은 전범자들은 자신의 죄가 잊히기만을 학수고대했지만 그리 쉽지 않았다. 반대편에는 반드시 이들을 정의의 심판대에 올려야 한다고 벼르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수용소에 수감된 경험이 있는 검사 프리츠 바우어Fritz Bauer와 증인으로 나선 헤르만 랑바인Hermann Langbein이 그렇다. 책의 중반부터는 ‘집념의 검사’ 바우어와 죄를 은폐하려는 전범자들의 길고 치열한 법정 싸움이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독일은 같은 추축국인 일본과 달리 과거사 청산에 적극적이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재판을 따라가다 보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종전 이후 독일에는 중앙검찰청이 신설되어 바우어 같은 검사들이 전범자를 잡아들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런데 가해자들은 일관되게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했는데, 알다시피 이것이 혐의를 피해 가기에 가장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 신설을 승인하고 이곳을 관리한 파르벤 이사진이 유대인 학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고 주장하는 장면은 실소를 자아낸다. 모든 전범자들이 재판 내내 일말의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내비치지 않았으며, 심지어 카페시우스는 법정에서 웃음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반면에 증인으로 나선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은 이런 가해자들을 대면하고, 가해자들의 변호사로부터 무례한 질문을 받으며 괴로워했다. 가해자의 죄를 밝혀내기 위한 재판에서 생존자가 고통받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아직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우리를 비춰 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의 잔악함에 대한 경고이자
다음 세대에 대한 예방접종이 되는 책!
되풀이되는 폭력의 역사에 경종을 울리다


수많은 전범자들을 체포한 ‘나치 사냥꾼’ 시몬 비젠탈은 1970년~1980년대에 미국 전역의 대학 캠퍼스를 돌면서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모든 재판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에게 놓는 증오에 대한 예방접종이자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잔악함에 대한 경고가 될 것입니다.” 20세기 중반에 일어난 홀로코스트가 오늘날 우리에게 갖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희생된 이 사건은 단순히 영화나 소설의 소재로 되풀이되어 소비되는 것 이상으로 묵직한 메시지를 건넨다. 이 책은 우리와 다음 세대에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등으로 기능할 것이다.

“우리 중에는 아우슈비츠에서 마지막 길을 간 아이들의 공허한 눈, 그리고 의문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눈을 마주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행복하고 천진난만한 아이의 눈을 오랫동안 들여다볼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한스 호프마이어Hans Hofmeyer 판사는 지난했던 재판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가해자들을 제대로 처벌해야만 인간의 역사가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말이다. 홀로코스트를 주도하거나 이에 동조한 가해자가 아닐지라도 인간이라면 같은 인간이 저지른 죄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음을 표현한 문장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의 끝없는 탐욕으로 인해 희생되는 피해자들이 있다. 1970년대 10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캄보디아 자국민 대학살이나 1994년 르완다 대학살은 여전히 잔인한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저자 퍼트리샤 포즈너가 ‘악의 평범성’의 표상인 빅토르 카페시우스의 행적을 오랫동안 파고들어 책으로 펴낸 이유는 이를 경계하기 위함이 아닐까. 홀로코스트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 보이는 지금 여기의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