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자유테마여행 (2006~) <여행지>/6.인물기념관

충남 심훈기념관

동방박사님 2019. 3. 26.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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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1901~1936)

본명은 심대섭(沈大燮), 본관은 청송(靑松) 호는 해풍(海風), 아명은 삼준 또는 삼보, 서울출생, 아버지 심상정(沈相挺)의 3잠 1녀중 3남이다. 191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도, 1917년 왕족 이해영(李海暎) 

과 혼인하였다.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투옥, 토학당하였다.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1921년 항저우

(杭州) 치장대학에 입학 하였다.


1923년 귀국하여 연극,영화,소설집필 등에 몰두 하였는데 처음에는 특히 영화에 많은관심을 기울였다.

1924년 이해영과 이혼하였고 같은 해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였다. 1925년 조일제(趙一齊)  번안의 (長恨夢)이 영화화 될때 이수일(李守一)역으로 출연하였고, 1926년 우리나라 최초의영화 소설 [탈춤]을 동아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이듬해 도일하여 본격적인 영화수업을 받은 뒤 귀국하여 영화 [먼동이 틀 때] 를 원작 집필, 각색, 감독으로 제작하였으며 이를 단성사에서 개봉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식민지 현실을 다루었던 이영화는 [어둠에서 어둠으로]라는 제목이 말썽을 빚자 개작한 작품이며 영화제작은 이것으로 마지막 이었다.


그는 1928년 조선일보사에 다시 입사하였고, 1930년 안정옥(安貞玉)과 재혼하였다. 1931년 경성방송국으로

옮겼으나 사상문제로 곧 퇴직하였다. 1932년 고향인 충청남도 당진으로 낙향하여 집필에 전념하다가 이듬해 상경하여 조선중앙일보사에 입사 하였으나 다시 낙향하였다 1936년 장티푸스로 사망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강한 민족의식이 담겨있다.[영원한 미소] 에는 가난한 인텔리의 계급적 저항의식, 식민지사회의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정신. 그리고 귀농 의지가 잘 그려져 있으며 대표작[ 상록수]에서는 젊은이들의 희생적인 농촌사업을 토아여 강한 휴머니즘과 저항의식을 고취시킨다.


행독적이도 저항적인 지성인이었던 그의 작품들 에는 민족주의 게급적인 저항의식 및 휴머니즙이 기본정신으로 관류하고 있다. 특히, 농민게몽문학에서 이후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본격적인 농민문학의 장을 여는데 크게 공헌한 작가로서의 큰 의의를 지닌다.  












상록수



독립운동에 대한 굳은 의지

경성고등보통학교 3학년이었던 심훈은 맨 앞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어 학교로부터 퇴학조치를 당했다.당시회유정책으로 20세미만의 학생들에게는 '다시 독립운동을 할터인가? 물어보아서 안하겠다고 대답하는 학생은 석방할 방침 이었다. 그러나 심훈은 자신의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하면서 "일본이 내 목을 이렇게 잘라도 죽기까지는 독립운동을 하겠오." 라고 하였다. 결국[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으나 옥중에서도 민족 독립을 향한 결의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심훈 선생님의 엽서 (심훈선생 영화관련 자료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