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차정의사 생가
부산시 동래구 칠산동 319-1번지에 위치한 박차정의사 생가는 1944년 34세의 나이로 순국하기까지 독립운동단체인 근우회, 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 등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여성항일 운동가 (박차정 1910.7.7.~1945.27)의사의 애국애족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부산 동래 복천동에서 출생한 박차정의사는 1925년 동래일신여학교 (현 동래여자고등학교)을 입학하여 항일여성운동단체인 근우회(槿友會)동래지부 회원. 동래 노동조합 조합원, 신간회 동래지회 회원 등으로 활약하였다. 1929년 졸업한뒤 근우회 중앙집행위원, 조사연구부장, 상무위원, 선전부장, 출판부장 등을 맡아 여성항일 운동에 이바지 하는 한편, 그 해 12얼 근우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광주학생운동 동조 시위를 전국적 반일학생운동으로 확대시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듬해 1월 부산방직 파업사건을 주도하다 다시 체포되었으나 병보석으로 풀려난 후,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의열단 단장 김원봉(金元鳳)과 결혼해 의열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32년에는 한중 연합 항일 투쟁의 일환으로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제1기 여자부 교관으로 임명되어 사관생 양성에 주력하였다.
그 뒤 민족혁명단 부녀부주임을 거쳐, 1936년 7월 이성실과 함께남경 조선 부인회를 조직해 부녀자들의 민족의식고취와 대동단결을 주도하였고, 이듬해 2월 장쑤성 쿤룬산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 부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1944년 5월 사망하였다. 195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독립운동가 박차정의생가
관리자 : (사) 박사정의사 숭모회/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1930년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항일전투에에 직접 찬전하는 등 1944년 34세의 나이로 순국하기까지 한국독립운동의 거목으로 활동한 점이 인정되어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상하였으며 의사의 숭고한 넋을 기려 생가를 복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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