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자유테마여행 (2006~) <여행지> 416

전남 신안군 증도 장뚱어다리

증도의 탄생 물이 귀한섬, 증도 증도는 예로부터 물이 귀한 곳이라 하여 시리섬(시루섬)이라 불리기도 하였으며, 제방이 축조되어 전증도와 후증도가 하나의 섬으로 합해지면서 증도라고 불러지게 되었다. 증도의 일찍증(曾)자는 더하다의 뜻도 가지고 있어 섬과 섬을 합하였다는 의미로 풀이되며 글자모양이 시루를 연상케 한다 하여 시루증(甑)자 증도로 불리기도 했다. 그래서 증도는 물이 귀한 섬의 뜻을 가지고 시루와 섬을 합하였다는 의미와 섬도(島)자를 사용하여 증도라 불리게 되었다. 두개의 섬, 하나로 연결되다. 섬을 하나로 연결하는 제방은 1953년 한국전쟁이후 피난민들을 위한 생계수단으로 염전을 조성하면서 축조되었고 그때 만들어진 염전이 지금의 태평염전이다. 염전 초기에 지어진 증도의 주택들은 피난민들이 고향을..

전남 신안군 증도 태평염전

증도 태평염전 증도대교를 건너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달팽이 그림을 쫓아가다 보면 가장 맞닥뜨리는 것이 광활한 소금밭이다.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태평염전이다.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섬 증도의 보물은 다름아닌 이 소금이다. 이렇게 작은 섬에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단일 염전이 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 140만 평에 달하는 태평염전에서는 매년 1만 6천여 톤의 천일염을 생산해 낸다. 이는 우리나라 천일염 생산량의 60퍼센트에 이르는 양이다. 천일염은 바닷물을 염전에 모아 햇살과 바람으로 말려 생산하는 친환경 무공해 소금이다. 천일염은 염화나트륨, 칼륨, 코발트, 요오드, 망간, 아연 등 80여종의 미량원소가 함유되어 있는 미네랄 보고이다.

전남 신안군 증도 태평생식물원

태평염전 창업자 이야기- 故손만철 1953년에 조성이후후 민영화되어 대평염업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던 증도의 염전은 경영악화로 점차 어려움을 겪게 된다. 1985년 (故) 손만철회장은 대평염업을 인수하고 염전의 이름을 태평염전으로 개칭하였다. 손만철 회장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소금을 생산하고, 천일염 값이 좋아지면 이 곳을 유토피아로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도시에서 사업을 하던 그는 모든 사업을 뒤로하고 염전에 모든 것을 투자하기 시작한다.

전남 신안군 증도 소금밭 체험장

전남 신안군 증도 소금밭 체험장 염전은 크게 저수지, 증발지, 결정지로 구성되 있다.저수지는 해수를 저장하는 공간이며, 증발지는 태양열과 바람을 통해서 염도를 높이는 곳으로 난치 (제1증발지)와 누데 (제2증발지)로 구성 되어있다. 결정지는 난치와누데에서 염도를 높인 해수를 소금 결정체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바닷물을 끌어 들여 소금을 생산하기 까지는 20~25일 소요된다.

신흥무관학교 설립107주년 기념식 참석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는 1911년 서간도(길림성 통화시 류하현)에서 개교한 독립군 양성 기관으로, 현 경희대학교(慶熙大學校)의 전신이다.[1] 신흥무관학교의 졸업생들은 서로군정서 의용대, 조선혁명군, 대한독립군,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국 광복군 등에 참여해 무장 독립운동의 한 축을 차지하며 민족 해방에 크게 기여했다. 신흥무관학교 1919년 5월 3일 만주에 설립되었던 독립군 양성학교. 연원 및 변천1909년 신민회(新民會)는 만주에 독립군기지를 건설하기로 하고 이동녕(李東寧)·이회영(李會榮)·장유순(張裕淳) 등을 기지 건설지 답사를 위해 만주에 파견하였다.그리고 국내에서 모여드는 청년들에게 구국이념과 항일정신을 고취시켜 조국광복의 중견간부로 양성시킬 목적으로 신흥강습소를 설치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

육군사관학교 열병식

육군사관학교 1945년 12월 5일 군사영어학교로 시작하여 1946년 5월 1일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6월 15일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1948년 9월 5일에 육군사관학교로 바뀌었다. 남조선국방경비대가 창설되면서 경비사관의 양성을 목적으로 태릉에 설치되었고, 초대교장은 이형근 참령]이 맡았다. 군사교육 초기에는 일본식이 많이 혼재해 있었는데 점점 주한미군 군사고문단의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식으로 바뀌었다. 1~9기까지는 군경력자들이 입교하여 단기 교육으로 임관했다. 1949년 10기(생도 1기)부터 정규과정으로 2년제 교육 실시 방침을 세웠으나, 장교수급 문제로 1년으로 단축되었고, 그나마 한국전쟁의 발발로 많은 동기생을 전쟁터에서 잃은 채 1950년 7월 10일 대전시에서 소위로 임관했다. 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