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자유테마여행 (2006~) <여행지> 416

충남 심훈기념관

심훈 (1901~1936)본명은 심대섭(沈大燮), 본관은 청송(靑松) 호는 해풍(海風), 아명은 삼준 또는 삼보, 서울출생, 아버지 심상정(沈相挺)의 3잠 1녀중 3남이다. 191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도, 1917년 왕족 이해영(李海暎) 과 혼인하였다.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투옥, 토학당하였다.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1921년 항저우(杭州) 치장대학에 입학 하였다. 1923년 귀국하여 연극,영화,소설집필 등에 몰두 하였는데 처음에는 특히 영화에 많은관심을 기울였다.1924년 이해영과 이혼하였고 같은 해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였다. 1925년 조일제(趙一齊) 번안의 (長恨夢)이 영화화 될때 이수일(李守一)역으로 출연하였고, 1926년 우리나라 최초의영화 소설 [탈춤]을 동아일보에..

유관순기념관

유관순 (1902~1920)유관순은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에 일어난 3.1독립만세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16세의 가녀린 여학생으로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일제의 압박에 저항했던 그녀를 생각하면 누구라도 추모의 염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 작은 의문이 따른다. 박은식의 [대한독립지혈사]에 따르면 3.1운동만세독립 당시 무려 7천여명의 생령이 일제 총칼에 희생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 수많은 애국지사들 가운데 유관순 한 사람만을 떠올리게 되었을까? 유관순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46년경 이화여고 교장 신봉조와 이화학당 출신의 박인덕이 유관순 기념사업회를 설립하면서 부터였다. 신봉조는 일제 말기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참사로서 임전대책협의회와 조선임전보국단에 참여했고, 황도..

왕실수문장 교대식

수문장 교대의식의 역사 조선시대 수문장제도는 왕권의 강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국가방위와 같은 개념이었다. 수문장제도는 조선의 8대 임금 예종이 즉위하던 해 (1469년)에 처음으로 수문장이 배정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9대 임금 성종 시절에 제도화를 거친 후 경국대전에 수문장제도 운영규정이 수록되면서 제 모습을 갖추었다. 그리고 이곳 덕수궁 대한문에서의 수문장 교대의식은 1906년 대한문이 덕수궁의 정문로 정해지면서 시작되었다.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 서울의 전통문화행사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

한국추상조각의거장 - 우성 김종영

김종영 미술관 지난 세기는"서화에서 미술로 전환기"였다. 안타깝게도 서양미술이 도래하던 시기가 일제강점기가 겹쳐 미술을 주체적으로 수용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여러가지 문제가 지금 우리 미술계 구석구석에 남아있다. 어느사회분양와 마찬가지로, 지난세기 우리미술계는 맥락을 ..

웃다리 사물놀이 (오영환 외 열수풍물패)

웃다리 사물놀이 (오영환 외 열수풍물패) 웃다리 사물놀이는 경기도, 충청도북부, 중부지방에서 전승되어온 가락으로 쩍쩍이, 칠채, 육채, 삼채, 휘모리로 이루어진 사물놀이다. 삼채와 굿거리의 중간정도의 빠르기로 연주되는 (3소박 4박 12/8)쩍쩍이 장단으로 시작하여 칠채, 욱채, 삼채, 휘모리로 맺으며... 특히 빠른 휘모리 장단에 태평소의 아리랑음을 넣어 흥과 신명을 다하는 오묘한 즐거움을 느끼게 하였다. 칠채는 기본 장단으로 육채는 쥐고 푸는 멋으로, 가장 한국적인 장단 삼채와, 박진감 넘치는 휘모리 장단에 태평소와 아리랑의 만남은 우리의 음악과 타악의 강함을 아름다움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한량무 (임이조류)

한량무 (임이조류) 임이조 선생님의 한량무는 4인 (한량, 별감, 승려, 기생)이 추던 조선시대의 남사랑 당패의 마당극 형식의 춤이다. 한량무는 풍류를 즐기는 한량의 멋스런 모습을 묘사한 춤으로 흰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멋과 여유를 부리는 남성 춤의 백미로 자연스러운 어깨춤과 맛깔스러운 발디딤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