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기독교 문화유산 (2016~) <답사지> 343

구세군빌딩- 구세군한국선교100주년기념

구세군 18~19세기 개신교에서는 모두 개인주의적인 신앙에서 탈피 성령에 의한 회심으로 그리스도를 헌신적으로따르려는 개인구원과 사회적 약자를 그리스도의 자비로 섬기는 사회구원의 균형을 맟추려는복음주의운동이 활발 했는데, 그 중 하나가 구세군운동 이었다. 처음에는 기독교 ..

명동대성당

명동대성당지정번호 : 사적 제258호명동성당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본당이다. 이 자리는 초기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공동체가 있던 명레방 근처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1845년에 귀국해 활동하던 돌우물골 (현 중구소공동)이기도 하다. 본당 설립이후 120여년간 줄곧 한국 천주교 신앙의 중심이 되어왔다.오랜 박해에서 획득한 신앙의 자유, 소외받고 가난한 민중의 안식처, 문주화 운동의 상징이기도 하다.토지 매 1883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풍수지리설에 따른 정부와의 갈등, 청일전쟁 등으로 공사가 중단되면서 15년 만에 완공되엇다. 고딕 구조에 가까운 본격적인 서양식 성당으로 프랑스코스트 신부가 설계하였다 파리외방전교회의 재정지원으로 1892년 착공해 189..

러시아 정교회의 내한선교 - 파주 용미리 동방정교회

사진-파주 용미리의 동방정교회 러시아 정교회의 내한 선교 서울 정동지역 기독교 역사유적을 답사를 진행하다 보면 사람들이 가장 신선하게 여기는 답사 코스가 바로 '구 러시아 공사관'이다. 캐나다 대사관과 예원학교의 사잇길로 제법 경사진 오르막을 오르면 숨은 듯 서 있는 옛 러..

굴씨의 묘 : 조선 땅을 밟은 최초의 그리스도인 여성

굴씨의 묘 덕양구 대자동 산기슭에는 명나라 마지막 궁녀의 한 맺힌 사연이 있답니다. 17세기 병자호란때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를 모시던 명나라 마지막 궁년 굴씨는 소현세자가 귀국할때 함께 따라 왔는데, 소현세자가 죽은 후에도 중구으로 돌아가지 않았답니다. 이유는 조..

고양 행주성당

고양 행주성당 (등록문화제 제455호- 지정일:2010년 2월19일 소재지 : 고양시 덕양구 행주산성로 144번길 50 (행주외통) 고양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 성당이다. 서울로 통하는 한강 가에 자리하여 천주교의 전래와 여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1910년에 처음 지어져 1928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졌고 1949년에 새롭게 증축하였다. 주 출입구는 팔작지방, 제대 쪽은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성당의 건립 시기를 적은 상량 묵서 (上樑 墨書) 도 남아 있어 상당건물의 역사를 살펴보는 데 도움을 준다. 지금의 행주성당은 처음 지어진 후 벽돌 벽과 시멘트 기와 등으로 변형되고 노후화된 것을 1950년대의 사진등 옛 모습을 고려하여 2015년에 보수한 것이다. 고양시 행주성당은 한강과..

경기도광주 천진암성지

경기도광주 천진암 성지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앵자봉 기슭에는 조그만 암자가 놓여있었다. 어느 때인가 없어져 주춧돌만 남았던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암자가 바로 한국천주교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천진암이다.당시 천진암에서는 당대의 석학 녹암 권철신이 주재하는 강학회가 있었다. 권철신. 일신. 형제와 정약전. 약종, 약용 형제, 이승훈 등 10여명의 석학들은 광암 이벽의 참여와 함께 서학에 대한 학문적 지식을 종교적 신앙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1779 당시 이벽(세레자 요한) 정약전 21세, 이총억15세, 권철신 (암브로시오) 44세등 주로 10대와 20대 젊은이들이 모여서 그  당시 아주 생소하고 이상한 천주교 책을 읽고 실천하는 일을 하였다. 천진암 강학은 한국 천주교화 창설의 배경..

광주퇴촌 천지암 천주성지

경기도광주 천진암 성지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앵자봉 기슭에는 조그만 암자가 놓여있었다. 어느 때인가 없어져 주춧돌만 남았던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암자가 바로 한국천주교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천진암이다.당시 천진암에서는 당대의 석학 녹암 권철신이 주재하는 강학회가 있었다. 권철신. 일신. 형제와 정약전. 약종, 약용 형제, 이승훈 등 10여명의 석학들은 광암 이벽의 참여와 함께 서학에 대한 학문적 지식을 종교적 신앙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1779 당시 이벽(세레자 요한) 정약전 21세, 이총억15세, 권철신 (암브로시오) 44세등 주로 10대와 20대 젊은이들이 모여서 그  당시 아주 생소하고 이상한 천주교 책을 읽고 실천하는 일을 하였다. 천진암 강학은 한국 천주교화 창설의 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