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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700만 년의 진화 끝에 찾아온 인류의 황금기
마침내 시작된 슬기로운 사람의 시대
지금으로부터 700만 년 전 무렵 아프리카에서 처음 등장한 인류는, 350만 년 전 무렵부터 돌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약 200만 년 전쯤에는 아프리카 밖으로 나와서 유럽과 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하였고,
180만 년 전쯤부터는 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수많은 인간종이 지구에 등장했다 사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30만 년 전 어느 날, 현생인류의 직접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에 나타났다.
이 책은 그들이 만들어낸 특별한 능력에 관한 이야기다.
캄캄한 동굴 안에서 작은 등불을 켜고 보는 사람을 황홀하게 만드는 황소 그림을 그린 예술가 사피엔스. 통나무를 단단하게 엮은 배를 타고 마다가스카르에서 하와이까지 인도양과 태평양을 건너간 항해자 사피엔스. 손에는 횃불을 들고 몸에는 가죽으로 만든 옷을 여러 겹 겹쳐 입고서 꽝꽝 얼어붙은 시베리아와 베링해협을 통과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탐험가 사피엔스. 이들은 무한한 상상력과 보이지 않는 것을 가지려는 욕망으로 이 모든 일을 이루어냈다.
이 과정에서 더욱 정교한 도구들이 출현했고, 음악과 미술, 원시 종교 및 가족과 돌봄 같은 정신문화도 발달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4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 사이에 생긴 변화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문화 1.0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원시’라는 고정관념을 걷어내고 우리 인간이 처음 사피엔스였을 때의 모습을 탐구해보자.
목차
들어가며 4
따뜻한 불, 그다음은 밝은 불 - 등잔의 기원 ①
태초의 혁명은 밤에 시작됐다 18
진화의 터널을 밝힌 등잔 20
시간의 터널을 건너온 기술 22
밤의 무대의 막이 오르다 - 등잔의 기원 ②
그대들은 어떻게 세상을 밝힐 것인가 25
작은 등불 하나 가지고 무얼 하나 27
어둠이 깊을수록 불은 더 밝게 빛난다 28
음악과 상징, 공동체의 대화법 32
인간의 끝없는 욕망 - 안료의 발견 ①
봄의 딜레마 36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 하는 마음 38
10만 년의 두께를 간직한 색깔 40
아름다움을 탐하는 마음-안료의 발견 ②
총천연색의 유혹 43
천연에서 인공으로, 안료에서 물감으로 46
원시와 현대의 교집합 48
아시아 예술혼의 기원을 찾아서
새로운 발견은 언제나 반대를 부르지 50
그림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54
보이지 않는 상징의 힘
쓸모없음 속에 깃든 특별함 58
말하지 않은 의도를 알아차리는 일 61
보이지 않는 것을 사용하여 생존하는 법 63
세상에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마음을 다스리는 소리의 힘 65
최초의 악사는 누구였을까 67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 69
우리가 그 뼈다귀를 집어 든 순간, 그것은 우리의 도구가 되었다 - 뼈로 만든 도구 ①
돌과 뼈에 남아 있는 인류의 삶과 생각들 74
재료에 따른 기능의 분배 77
영원한 건 절대 없어 - 뼈로 만든 도구 ②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도구의 성능 81
더 작고, 더 강하고, 더 날카롭게 83
첨단기술의 발전과 재래기술의 퇴화 86
오래된 연장이 새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 - 뼈로 만든 도구 ③
바늘구멍의 탄생 89
혹한의 생존 도구, 바늘 91
차이와 차별의 기원에도 바늘이 있었다 94
살아남은 인간의 말을 전부 믿을 수 없는 이유 - 네안데르탈인과 사피엔스의 도구 ①
그들의 존재가 궁금한 이유 97
나의 혈관을 흐르는 너의 DNA 99
필요를 넘어 부가가치로 진화하다 101
의지와 능력의 차이가 아닌 기억의 차이 - 네안데르탈인과 사피엔스의 도구 ②
상상의 차이가 생존을 결정한다 105
죽음을 기념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107
죽은 사람의 기억으로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110
육상인류에서 바다인류로
결성! 해산물 원정대 114
물고기를 낚는 여러 가지 방법 116
신석기시대의 문을 열다 120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자 - 바다를 건넌 사람들 ①
바람아 불어라! 124
마침내 대양 앞에 서다 126
경계를 넘는 도구 128
100만 년 동안의 항해 - 바다를 건넌 사람들 ②
당신의 용기를 시험하는 바다 132
원시 해상 네트워크의 흔적 133
고고학적 복원 실험 137
두뇌 발달의 비밀이 담긴 구석기 식단 - 구석기인들의 식생활 ①
구석기 식단, 700만 년 동안의 먹거리 142
사냥꾼 대 요리사 145
인간, 자연계의 왕이 되다 - 구석기인들의 식생활 ②
사람을 돌보면서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어떤 사람 151
자연의 경고에 대처하는 자세 154
신석기혁명의 의의는 무엇일까? 157
생명 연장의 대가 - 구석기인들의 식생활 ③
두 번째 식이 전환기의 현대인류 161
진화의 마지막 순간에 등장한 존재, 노인 164
그 누구도 인간의 미래를 알 수 없다 167
간석기에 얽힌 오래된 오해 - 구석기시대의 신석기
통설을 뒤집는 고고학 증거 172
간돌도끼, 구석기인들의 신석기 174
정의가 곧 진리는 아니다 177
마치며 179
참고문헌 184
시각자료 출처 201
인명·지명 찾아보기 204
저자 소개
저 : 김상태
구석기 고고학을 전공하고 전기 구석기 시대 뗀석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원도 양구군 상무룡리 유적 발굴을 통하여 본격적으로 구석기 연구를 시작했으며, 그 밖에 제주도 최초의 구석기 유적인 서귀포시 생수궤 등 여러 발굴에 참여했다.
1996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박물관 업무를 시작했으며, 이후 유물관리부와 고고부, 전시팀 등 여러 분야에서 일하며 관련 저술과 전시로 활동을 넓혔다. 국립제주박물...
책 속으로
인간의 진화는 700만 년 동안 이어진 대사건이며,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중 도구를 본격적으로 만들고 사용한 것은 후반부 절반의 일이다.
고고학자들이 단단한 땅을 파거나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서 발굴한 도구와 뼈 화석을 과학 및 의학 분야와 함께 연구해서 고인류의 신체적·지적 특징과 능력을 비롯해 체질과 식이, 그리고 유전자 정보까지 생생하게 알게 됐다.
그것을 통해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고인류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인류가 만들어낸 상징체계와 예술의 기원, 기술의 발전 과정 같은 정신의 영역까지 들여다보았다. …
그 끝에서 우리는 우리가 유별나고 도드라진 ‘점 ’이 아닌, 과거로부터 이어진 긴 ‘선’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 「들어가며」 중에서
어느 날, 어두운 밤 바위그늘 아래에서 모닥불을 지키던 인간들은 전과 달리 맞은편에 앉아 있는 동료의 얼굴이 확실히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닥불을 향해 둘러앉은 그들의 등 뒤로 어둠이 밀려나고 그 사이에서 그림자가 일렁이는 것을 마침내 알게 됐다. 그렇다, 불은 어둠을 걷어낼 수 있다.
어둠이 걷히면 그 안에 도사리고 있던 막연한 두려움도 사라진다.
불이 갖고 있는 빛의 속성을 처음 자각한 인간들의 눈에는 그 밝은 빛이 신기함을 넘어 경이롭고 신성한 어떤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몸의 진화만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었던 ‘제3의 눈’을 갖게 됐다.
--- 「따뜻한 불, 그다음은 밝은 불-등잔의 기원 ①」 중에서
유럽에서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벽화는 스페인의 엘카스티요동굴의 ‘손 프린팅’이다. 대략 4만 년 전 무렵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술라웨시 레앙테동게동굴에서 측정된 연대는 그보다 5000년가량 더 오래되었다.
아시아에서 발견된 벽화의 연대를 유럽 연구자들이 받아들이려면 좀 더 많은 자료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절대연대의 신뢰도는 충분하다.
물론 유럽에도 6만 년이 넘었다고 추정되는 벽화들이 있다.
따라서 벽화 연구가 단순히 어디가 더 오래된 것인지를 따지는 ‘최초 논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 「아시아 예술혼의 기원을 찾아서」 중에서
지금으로부터 약 10만 년 전후에 인류의 생활에 상징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무렵에는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빙하기가 시작되면서 아프리카 지역의 숲과 초원이 서서히 사막으로 바뀌었다. …
빙하기와 같은 대규모 환경 변화는 개인의 신체 능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사람들끼리 힘을 모으고 소통하고 교류하여 집단의 유대를 강화해야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진다.
상징은 이렇게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집단의 생존 가능성을 찾는 과정에서 싹텄을 것이다. 수백 만 년에 걸쳐 진화한 인간의 인지능력이 마침내 상징이라는 새로운 생존 수단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 「보이지 않는 상징의 힘」 중에서
돌과는 다른 뼈의 성질을 잘 살린 송곳과 창, 화살촉 등으로 발전한 뼈 도구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더욱 특별한 영역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약 4만 년 전에 등장한 새로운 종류의 뼈 도구들은 기능면에서 돌 도구들과 더욱 분리되었다.
첫 번째 신호탄을 쏜 것은 아주 작고 가느다란 뼈바늘이다.
약 8만 년 전부터 사용한 뼈송곳은 넓은 의미에서 바늘의 조상 격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바늘은 뼈송곳의 기능에서 가죽 등을 섬세하게 연결하는 기능만 분리해 그 효율을 더욱 극대화한 도구다.
--- 「오래된 연장이 새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뼈로 만든 도구 ③」 중에서
인류사에서 처음으로 정착을 시작한 어부들은 신석기시대에 이르러 해안을 따라 광범위하게 정착 영역을 확대했다.
소위 신석기혁명의 핵심은 채집경제에서 생산경제로의 전환이지만, 그것 역시 정착이 반드시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오할로2 유적의 약 1만 년 전 중석기시대 층에서는 야생 보리와 밀, 귀리 등의 곡물 재배와 관련된 초기 증거들도 발견되었다.
구석기시대 어부들은 어로를 위해 정착생활을 시작했지만 차츰 주변 식물들로 관심이 확대되었고, 결국 원시적 농경의 길로 접어드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 「육상인류에서 바다인류로」 중에서
100만 년 전 인간이 아프리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이후 바다를 개척하고, 바다 건너 낯선 땅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부단히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바다를 건널 때 사용했던 도구는 여전히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 운이 좋다면 어느 해안가 늪지에서 배처럼 생긴 도구를 발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항해의 시작과 방법을 정확히 밝히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확실한 물증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왜 그토록 많은 시행착오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바다를 건너고자 했는가 하는 질문이 보다 본질적이라고 생각한다.
--- 「100만 년 동안의 항해-바다를 건넌 사람들 ②」 중에서
인간의 식습관은 문화적 속성을 강하게 반영하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는다.
호모 사피엔스의 식습관도 아프리카에서 이미 형성된 것이었고, 새로 도착한 곳에서도 기존의 관습을 유지하려는 관성이 작동했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과 동등하거나 더 진보한 사냥 도구와 기술을 보유했음에도, 이들의 육식 의존도는 최대 60퍼센트를 넘지 않았다.
그 결과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식재료가 다양해짐으로써 일부 식재료가 고갈되더라도 생존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 「인간, 자연계의 왕이 되다-구석기인들의 식생활 ②」 중에서
긴 역사를 통해 현대의 호모 사피엔스는 이전의 어떤 조상 인류도 가진 적 없는 매우 특별한 재능을 갖게 됐다. 바로 길고 긴 과거를 한꺼번에 조망하는 능력이다.
가깝게는 인간이 발명한 기호나 문자로 기록된 정보를 확보했고, 멀리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지구와 우주의 까마득한 역사까지도 추론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제는 현재의 우리도 앞서 살았던 다른 종들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멸종의 길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고고학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인간과 자연을 깊이 탐구하여 거둔 성과 중 하나가 “우리는 반드시 멸종한다”라는 명제다.
--- 「마치며」 중에서
출판사 리뷰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인간의 시간을 탐구하는 고고학자
인간을 인간으로 살게 한 특별한 능력, 예술과 기술의 출현에 주목하다
고고학의 연구 대상은 대부분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긴 시간을 견뎌낸 잔해(殘骸)들이다. 간혹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서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를 1만 조각 퍼즐 맞추기에 비유하곤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장, 국립춘천박물관 관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국립나주박물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는 국내 대표 고고학자 김상태는 새 책 『우리가 처음 사피엔스였을 때』에서 자신이 완성한 퍼즐을 꺼내어 보여준다.
위대한 인간의 성공적인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로 이어진 시간의 축 위에서 역사를 다시 바라보면, 그때그때 주어진 지구 환경에 맞춰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낸 다양한 호모종의 일상이 떠오른다.
고고학의 연구가 그들의 시간에 더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서는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지은이는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적·신체적 특징보다,
그 밖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결국 그들이 지구 문명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인 예술적·기술적 특징에 주목한다.
이 책 역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과정의 일부로서, 고고학과 인접 학문의 연구 성과들을 몇 가지 주제로 재구성했다.
특히 해부학적으로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 즉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 등장했을 무렵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
물질문명 발달의 가속화는 인간이 돌 조각을 집어 든 직후부터 시작되어서 지금까지 이어진 일관된 경향이다.
이 가속화는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과 함께 마치 거대한 증폭기를 장착한 듯 한층 더 빨라졌다.
그렇다면 우리 신체의 진화도 가속화되고 있을까? 여전히 진화의 흐름 안에 있는 우리로서는 이 복잡다단한 질문에 답하기 쉽지 않다.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걸음 물러서서 좀 더 넓은 시야로 조망해 볼 필요가 있다.
_「들어가며」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가지려 하고, 결국 그것에 형태를 부여한 사피엔스
진화를 초월하여 공동체와 사회를 창조하고 마침내 지구 문명의 주인공이 된 슬기로운 사람들
세계 각지의 동굴 속에 수만 년 전 우리의 선배 사피엔스들이 남겨놓은 그림이 있다. 피카소가 “그날 이후 모든 예술은 퇴보했다”라고 감탄한 스페인 알타미라동굴의 황소 그림,
방금 전에 디즈니 만화영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귀여운 인도네시아 레앙테동게동굴의 돼지 그림, 현대 도시의 담벼락을 빼곡하게 채운 그래피티 예술을 닮은 아르헨티나 리오핀투라스동굴의 손바닥 그림. 때로는 화려하게,
때로는 섬세하게 표현된 수만 년 전의 벽화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 걸까?
많은 경우 벽화 주변에서 손바닥만 한 등잔과 동물의 뼈로 만든 피리 등이 함께 발견되었다.
이러한 음악과 미술의 흔적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은이는 지구 환경의 대규모 변화에 대한 인간의 적응 활동이 예술의 기원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빙하기와 같은 기후변화는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현상이다.
여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집단이 힘을 모으고 소통하고 교류해야 한다.
이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유대감이며, 이 감정은 집단 구성권 간의 정서 공유로 형성된다. 예술은 이렇게 집단의 생존 가능성을 찾는 과정에서 싹텄다는 것이다.
예술로 표현된 상징은 곧 그 집단의 언어였으며, 이와 같은 고차원의 도구를 통해 사피엔스는 환경변화에 집단 차원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살아남은 호모 사피엔스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발전한 환경 적응력을 바탕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거쳐, 오세아니아와 아메리카 대륙, 그리고 태평양 한가운데의 섬과 북극에까지 진출하며 전 지구에 정착했다.
때때로 동굴 유적에서 뼈로 만든 피리가 함께 발견되기도 한다.
상상력을 한 번 더 발휘해보자. 절대 어둠으로 꽉 찬 동굴 안에 하나둘 작은 등불이 켜지더니 등잔, 가느다란 뼈 피리 소리, 원시 타악기의 둔탁한 울림, 벽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야생 들소 떼, 붉은 손바닥 자국, 그 사이를 채우는 원시 언어와 몸짓이 모습을 드러낸다.
시간이 흐를수록 빛과 소리와 몸짓이 하나로 섞이면서 신이함이 점점 고조된다.
거기 모인 구석기인들이 어떤 영감에 휩싸인 채로 대자연의 일부로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신화를 동굴 벽에 그리지 않았을까. _「밤의 무대의 막이 오르다」에서
인류의 진화는 방향과 한계를 뛰어넘은 혁명이었다
그래서 놀랍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두렵다
흔히 우리는 진화를 생물종이 자연환경에서 생존의 유불리에 따라 신체 기능을 한 방향으로 강화하거나 퇴화시키는 장기간의 변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진화에 대한 우리의 통념이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오해일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사실 인류의 탄생부터 오늘에 이르는 700만 년의 시간에는 일정한 방향성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진화는 고비마다 새롭고 다양하고, 그래서 절대로 예상할 수 없었던 상황을 맞닥뜨리며 진행됐다.
지구 생태계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 가장 극적으로 진화한 결과 인간은 불과 700만 년 만에 먹이사슬 하층의 피식자에서 최상층의 포식자로 올라섰다.
인간이 이토록 극적으로 진화한 배경에는 생태계의 다른 생물체와는 극명하게 다른 특징이 하나 있다.
우리는 신체기관만 진화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손과 발 이외에도 돌과 뼈로 만든 도구, 그물과 독(毒) 같은 도구를 개발해서 생태계에서 상위 포식자를 모두 제압했다.
나아가 인간이 창조한 고도의 무형유산인 예술과 종교 같은 정신문화도 도구를 통해 표현되고 전수됐다.
그러더니 집단의 거주지인 도시를 만들고 농경을 시작하며 주변 환경을 논과 밭으로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요소가 한 가지 더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전의 어떤 생명체도, 조상 인류도 가진 적 없는 매우 특별한 능력을 손에 넣었다. 바로 아주 오래된 과거를 기억하고 조망하는 능력이다.
처음에는 인간이 발명한 기호나 문자로 기록된 시대를 학습했고,
그다음에는 땅 속에 남아 있던 유물들을 찾아서 과거를 복원했다.
20세기가 되자 만물의 원리를 이해하고 우주의 까마득한 역사를 추론하더니, 21세기에는 생명의 유전자인 DNA에 담겨 있던 정보도 해독했다.
놀라운 지혜의 확장을 통해 마침내 알게 된 미래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도 앞서 살았던 다른 모든 생물종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지구상에서 멸종할 것이라는 점이다.
고고학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인간과 자연을 깊이 탐구하여 거둔 성과 중 하나가 “우리는 반드시 멸종한다”라는 명제다.
짧디짧은 개인의 삶을 넘어서 영속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유전자조차도 일개 종 단위의 그리 길지 않은 생애를 살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이나 일개 종 유전자의 생애가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그 역시 현재를 이루고 있는 토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미 소용을 다하고 버려진 수만 년 전의 보잘것없는 돌조각, 뼈피리나 조가비 목걸이, 황토 안료 덩어리 등은 지극히 소중한 역사의 증거가 아닐 수 없다. _「마치며」에서
우리는 유별나고 도드라진 ‘점 ’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이어진 긴 ‘선’의 일부다
이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지금으로부터 최소 1만 년도 더 전의 구석기시대, 까마득한 원시의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인류가 남긴 흔적에는 우리로서는 완전히 이해기 힘든 부분도 많다.
하지만 지은이는 원시의 생활방식과 현재의 생활방식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역설한다.
불의 열 기능을 발견한 호모 에렉투스와 불의 빛 기능을 분리한 호모 사피엔스, 뇌와 장의 활발한 에너지 교환 작용 끝에 가장 큰 뇌와 가장 작은 소화기간을 가진 영장류가 된 인간,
처음으로 동료를 돌보기 시작한 인간이지만 때로는 다른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오해를 받는 네안데르탈인, 혹한의 빙하기를 견딜 옷을 짓는 도구인 동시에 계급과 신분의 차이를 드러내는 장신구를 제작하는 도구이기도 한 바늘, 진화의 마지막 순간에 등장한 가장 현명한 존재 노인,
그리고 최근 건강한 식사법으로 주목받고 있는 구석기 식단까지.
이 이야기들을 읽는 동안 원시의 생활무대가 오늘 우리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배우게 된다.
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의 흑요석 운반 혹은 교역 거리는 최대 300킬로미터 내외였다.
이에 비해 호모 사피엔스는 400킬로미터가 넘었으며, 동아시아에서는 최장 1000킬로미터에 이르렀다. ‘1000’은 단순히 더 먼 거리라는 의미를 넘어서, 더 좋은 재료를 확보하려 애쓴 호모 사피엔스의 열망을 담고 있는 숫자다. _「살아남은 인간의 말을 전부 믿을 수 없는 이유」에서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1739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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