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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나는 유대인이고, 141129번 수용자였으며, 수용소 내 치과의사였다
나는 이 책에서 가장 덜 중요한 사람이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다. 1941년 5월 5일 아침 나치에게 끌려가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해 1945년 5월 3일 해방을 맞기까지의 나날들을 담은 이 책은, 그렇지만, 여느 홀로코스트 회고록과는 달리 고문을 당하거나 존엄성이 짓밟히는 고통스러운 순간에 주목하지만은 않는다. 우리는 지은이가 수용소 내 의사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강제수용소에 대한 우리 인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 쓰러져 죽거나 가스실에 끌려가 죽는 등 유대인 학살에 집중된 이미지들을 떠올려볼 때, 이런 질문이 남겨진다. 수용소에 의사가 있을 필요나 이유가 뭐란 말인가? 하지만 ‘강제노동수용소’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수용소는 단순히 유대인을 말살시키고자 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동시에 수용자들에게서 노동력을 짜내고, 그들 노동력을 팔아넘기는 공간이기도 했다. 수용자들이 노동할 수 있는 한 그들을 살려두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또 나치 친위대원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수용소 내에는 의무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거기에 있는 것이 고작 붕대나 요오드, 진통제뿐이었을지라도. 이 책이 다른 홀로코스트 회고록과 구별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은이는 수용소 내 치과의사로서 수용자들 입안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나치 입안을 들여다보았고, 치과의사라는 직업상 여느 수용자들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서 수용소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 군상은 상당히 복잡하고 미묘하다.
나는 이 책에서 가장 덜 중요한 사람이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다. 1941년 5월 5일 아침 나치에게 끌려가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해 1945년 5월 3일 해방을 맞기까지의 나날들을 담은 이 책은, 그렇지만, 여느 홀로코스트 회고록과는 달리 고문을 당하거나 존엄성이 짓밟히는 고통스러운 순간에 주목하지만은 않는다. 우리는 지은이가 수용소 내 의사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강제수용소에 대한 우리 인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 쓰러져 죽거나 가스실에 끌려가 죽는 등 유대인 학살에 집중된 이미지들을 떠올려볼 때, 이런 질문이 남겨진다. 수용소에 의사가 있을 필요나 이유가 뭐란 말인가? 하지만 ‘강제노동수용소’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수용소는 단순히 유대인을 말살시키고자 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동시에 수용자들에게서 노동력을 짜내고, 그들 노동력을 팔아넘기는 공간이기도 했다. 수용자들이 노동할 수 있는 한 그들을 살려두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또 나치 친위대원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수용소 내에는 의무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거기에 있는 것이 고작 붕대나 요오드, 진통제뿐이었을지라도. 이 책이 다른 홀로코스트 회고록과 구별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은이는 수용소 내 치과의사로서 수용자들 입안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나치 입안을 들여다보았고, 치과의사라는 직업상 여느 수용자들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서 수용소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 군상은 상당히 복잡하고 미묘하다.
목차
서문
추방
폴란드의 작은 유대인 마을
전격전
독일의 점령
게토
첫 번째 수용소: 스테이네츠크
사랑에 빠지다
고문
두 번째 수용소: 구텐브룬
가족들의 죽음
아우슈비츠로 가는 화물차 안에서
세 번째 수용소: 아우슈비츠
네 번째 수용소: 퓌르슈텐그루베
전쟁의 막바지: 1943~1945
죽음의 행진
다섯 번째 수용소: 도라-미텔바우
재앙이 덮치다
침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전쟁 후의 독일
후기
옮긴이의 글
추방
폴란드의 작은 유대인 마을
전격전
독일의 점령
게토
첫 번째 수용소: 스테이네츠크
사랑에 빠지다
고문
두 번째 수용소: 구텐브룬
가족들의 죽음
아우슈비츠로 가는 화물차 안에서
세 번째 수용소: 아우슈비츠
네 번째 수용소: 퓌르슈텐그루베
전쟁의 막바지: 1943~1945
죽음의 행진
다섯 번째 수용소: 도라-미텔바우
재앙이 덮치다
침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전쟁 후의 독일
후기
옮긴이의 글
책 속으로
나치는 어떠한 구실이나 제한 없이 우리들 집을, 재산을, 희망을, 자긍심까지도 서서히 빼앗아갔다. 아래를 향하는 소용돌이는 매번 우리를 가장 낮은 곳으로 데려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우리는 곧 이 심연에 바닥이 없음을 알게 될 터였다.
--- p.59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가 내게 믿으라고 가르친 신이 어디에 있는지 의문을 품고 있었다. 나는 스테이네츠크에서 응급진료실 밖에 피 흘리며 누워 있을 때 신에게 의지하는 것을 그만뒀다. 그곳에서 나는 신 없이 나만의 창세기를 시작했다. 이런 비인간적인 삶의 바닥에서 유대인다움과 타협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 p.189
사형수 중 한 명이 목청껏 소리쳤다. “네놈들은 이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언젠가 세상이 이 죗값을 치르게 할 테니까, 이 가련한 살인자들아!” 유대인 입에서 나온 이 일갈은 그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주둥아리 닥쳐!” 게슈타포 한 명이 소리 질렀다. 하지만 그 사형수, 잃을 것이 없는 그 남자는 계속해서 외쳤다. “살인자들! 살인자들!” 그 남자의 입을 다물게 하려는 몇 차례의 시도가 모조리 실패로 돌아간 후, 얼굴에 흉터가 있는 게슈타포 한 명이 집행인에게 신호를 보냈고, 이윽고 밧줄이 죄어졌다. 악마가 나타난 것 같은 침묵이 맴돌았다.
--- p.203
퓌르슈텐그루베는 다양한 유대인들의 집합소였다. 프랑스 유대인들은 벨기에 유대인들을 좋아하지 않았고, 벨기에 유대인들은 네덜란드 유대인들을, 네덜란드 유대인들은 독일 유대인들을 좋아하지 않았고, 아무도 폴란드 유대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러시아 유대인들은 끼지도 못했다.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 유대인들과 비유대인들 사이에 협력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 p.294
1985년 7월, 나는 미국에서 동유럽으로 파견한, 유대인 남녀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에 합류했다. 우리는 폴란드로 갔다. 여러 장소는 내게 쓰디쓴 기억들을 불러일으켰다. 이곳이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이었다. 한때 문명이 중단되었던 아우슈비츠에 가보니 수용소 건물과 감시탑들은 세월과 풍파에 침식되어 있었다. 수천 명의 유대인 꼬마들의 마지막 발걸음이 내디뎌졌던 곳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예전에는 황량한 풍경이었던 곳에 잔디밭과 집들이 자리 잡았다. 비르케나우에서는 유해한 화장터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수많은 관광객이 그곳에서 수백만 명이 살해당했다고 적힌 안내문을 읽고 있었다. 그것은 진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다.
--- p.59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가 내게 믿으라고 가르친 신이 어디에 있는지 의문을 품고 있었다. 나는 스테이네츠크에서 응급진료실 밖에 피 흘리며 누워 있을 때 신에게 의지하는 것을 그만뒀다. 그곳에서 나는 신 없이 나만의 창세기를 시작했다. 이런 비인간적인 삶의 바닥에서 유대인다움과 타협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 p.189
사형수 중 한 명이 목청껏 소리쳤다. “네놈들은 이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언젠가 세상이 이 죗값을 치르게 할 테니까, 이 가련한 살인자들아!” 유대인 입에서 나온 이 일갈은 그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주둥아리 닥쳐!” 게슈타포 한 명이 소리 질렀다. 하지만 그 사형수, 잃을 것이 없는 그 남자는 계속해서 외쳤다. “살인자들! 살인자들!” 그 남자의 입을 다물게 하려는 몇 차례의 시도가 모조리 실패로 돌아간 후, 얼굴에 흉터가 있는 게슈타포 한 명이 집행인에게 신호를 보냈고, 이윽고 밧줄이 죄어졌다. 악마가 나타난 것 같은 침묵이 맴돌았다.
--- p.203
퓌르슈텐그루베는 다양한 유대인들의 집합소였다. 프랑스 유대인들은 벨기에 유대인들을 좋아하지 않았고, 벨기에 유대인들은 네덜란드 유대인들을, 네덜란드 유대인들은 독일 유대인들을 좋아하지 않았고, 아무도 폴란드 유대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러시아 유대인들은 끼지도 못했다.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 유대인들과 비유대인들 사이에 협력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 p.294
1985년 7월, 나는 미국에서 동유럽으로 파견한, 유대인 남녀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에 합류했다. 우리는 폴란드로 갔다. 여러 장소는 내게 쓰디쓴 기억들을 불러일으켰다. 이곳이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이었다. 한때 문명이 중단되었던 아우슈비츠에 가보니 수용소 건물과 감시탑들은 세월과 풍파에 침식되어 있었다. 수천 명의 유대인 꼬마들의 마지막 발걸음이 내디뎌졌던 곳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예전에는 황량한 풍경이었던 곳에 잔디밭과 집들이 자리 잡았다. 비르케나우에서는 유해한 화장터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수많은 관광객이 그곳에서 수백만 명이 살해당했다고 적힌 안내문을 읽고 있었다. 그것은 진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다.
--- p.414
출판사 리뷰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는 가능한가? 이 너무나도 유명한 명제가 간명하게 말해주듯이, 홀로코스트가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학교에서부터 이 참상을 배울뿐더러 홀로코스트를 다룬 수많은 책과 영화가 존재하기 때문에(심지어 우리는 VOD 서비스에서 ‘홀로코스트 영화’라는 분류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렇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이 이야기를 소개하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거꾸로 던져보아야 한다. 왜 그토록 많은 책과 영화가 필요했을까? 과연 홀로코스트 작품들은 충분할 만큼 많은가? 프리모 레비가 지적했듯이, 우리는 지금까지도 홀로코스트 희생자가 400만 명인지 600만 명인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언제나 수백만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살아 돌아온 극소수, 그들 중에서도 몇몇 이들만이 자신이 겪은 것을 대중 앞에 말할 수 있었고, 이제 그들 대부분은 생을 마감했다. 1919년에 브로네크 야쿠보비치로 태어났으나 종전 후 1949년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벤저민 제이콥스로 이름을 바꾼 지은이 역시 2004년 1월에 숨을 거뒀다. 그는 오랫동안 미국 전역을 오가며 자신의 홀로코스트 경험을 증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회고록 《아우슈비츠의 치과의사》를 낸 것은 종전 후 반세기가 지난 1995년, 후두암에 걸려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직감한 뒤였다. ‘아우슈비츠’로 표상되는 홀로코스트의 기억은 박물관 전시실 속에나 남겨질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다.
1941년 5월 5일 아침 나치에게 끌려가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해 1945년 5월 3일 해방을 맞기까지의 나날들을 담은 이 책은, 그렇지만, 여느 홀로코스트 회고록과는 달리 고문을 당하거나 존엄성이 짓밟히는 고통스러운 순간에 주목하지만은 않는다. 우리는 지은이가 수용소 내 의사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강제수용소에 대한 우리 인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 쓰러져 죽거나 가스실에 끌려가 죽는 등 유대인 학살에 집중된 이미지들을 떠올려볼 때, 이런 질문이 남겨진다. 수용소에 의사가 있을 필요나 이유가 뭐란 말인가? 하지만 ‘강제노동수용소’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수용소는 단순히 유대인을 말살시키고자 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동시에 수용자들에게서 노동력을 짜내고, 그들 노동력을 팔아넘기는 공간이기도 했다. 수용자들이 노동할 수 있는 한 그들을 살려두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또 나치 친위대원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수용소 내에는 의무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거기에 있는 것이 고작 붕대나 요오드, 진통제뿐이었을지라도. 이 책이 다른 홀로코스트 회고록과 구별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은이는 수용소 내 치과의사로서 수용자들 입안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나치 입안을 들여다보았고, 치과의사라는 직업상 여느 수용자들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서 수용소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 군상은 상당히 복잡하고 미묘하다.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이들이 있는가 하면 끝끝내 신앙을 지킨 이들이 있었고, 이득을 취하고자 동료들을 밀고하는 수용자가 있는가 하면 제대로 일하지 못하는 수용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총살하면서도 어떤 순간에는 인간적인 면을 보이는 나치가 있었다. 이렇듯 복잡한 면면은 지은이에게서도 드러난다. 그는 한편으로는 의사라는 직업에 따르는 사회적 존경이 수용소 내에서는 ‘특혜’(더 많은 배식, 고된 노동으로부터의 배제 등)로 돌아오기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리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죽은 수용자들 입안에서 금니를 빼내라는 명령에 치를 떨고 역겨움에 몸서리친다. 고통스럽고 모욕적인 나날들이 이어지는가 하면 믿을 수 없게도 수용소 바깥의 폴란드인 소녀와 사랑을 나누는 나날들이 이어지기도 한다. 유대인을 향해 사악한 행위를 거리낌 없이 저질렀던 이들이 그들 각자의 집에서는 좋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듯이, 수용소 역시 온갖 잔학한 행위가 벌어지는 한편 수용자들이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양가적인 공간이었다.
다섯 개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보낸 4년을 담담히 써내려간 이 책은 그곳에서 먹고, 자고, 치과진료소로 오는 이들을 치료하고, 누군가를 만나거나 작별 인사도 건네지 못한 채 헤어지고, 고문을 당하거나 예상치 못한 선의를 받고, 기쁘거나 슬픈 일을 겪은 기억들로 빼곡하다. 5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이 기억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수용자들 사이에 서 있는 당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몇몇 온라인 서평은 이 놀랄 만큼 생생하게 남아 있는 기억에 혹시 지어낸 게 아니냐는 의문을 내비치기까지 했지만, 다른 많은 홀로코스트 회고록이 보여주듯이(홀로코스트 회고록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세월호, 광주 등 거대한 비극에 휘말렸던 이들이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고통은 인간 마음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겨놓는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따라서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 다른 홀로코스트 생환자이자 198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이 이렇게 말했듯이. “기억이 없다면, 우리 존재는 빛이 스며들지 않는 감옥처럼 황량하고 불투명할 것이다.”
1941년 5월 5일 아침 나치에게 끌려가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해 1945년 5월 3일 해방을 맞기까지의 나날들을 담은 이 책은, 그렇지만, 여느 홀로코스트 회고록과는 달리 고문을 당하거나 존엄성이 짓밟히는 고통스러운 순간에 주목하지만은 않는다. 우리는 지은이가 수용소 내 의사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강제수용소에 대한 우리 인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 쓰러져 죽거나 가스실에 끌려가 죽는 등 유대인 학살에 집중된 이미지들을 떠올려볼 때, 이런 질문이 남겨진다. 수용소에 의사가 있을 필요나 이유가 뭐란 말인가? 하지만 ‘강제노동수용소’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수용소는 단순히 유대인을 말살시키고자 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동시에 수용자들에게서 노동력을 짜내고, 그들 노동력을 팔아넘기는 공간이기도 했다. 수용자들이 노동할 수 있는 한 그들을 살려두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또 나치 친위대원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수용소 내에는 의무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거기에 있는 것이 고작 붕대나 요오드, 진통제뿐이었을지라도. 이 책이 다른 홀로코스트 회고록과 구별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은이는 수용소 내 치과의사로서 수용자들 입안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나치 입안을 들여다보았고, 치과의사라는 직업상 여느 수용자들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서 수용소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 군상은 상당히 복잡하고 미묘하다.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이들이 있는가 하면 끝끝내 신앙을 지킨 이들이 있었고, 이득을 취하고자 동료들을 밀고하는 수용자가 있는가 하면 제대로 일하지 못하는 수용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총살하면서도 어떤 순간에는 인간적인 면을 보이는 나치가 있었다. 이렇듯 복잡한 면면은 지은이에게서도 드러난다. 그는 한편으로는 의사라는 직업에 따르는 사회적 존경이 수용소 내에서는 ‘특혜’(더 많은 배식, 고된 노동으로부터의 배제 등)로 돌아오기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리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죽은 수용자들 입안에서 금니를 빼내라는 명령에 치를 떨고 역겨움에 몸서리친다. 고통스럽고 모욕적인 나날들이 이어지는가 하면 믿을 수 없게도 수용소 바깥의 폴란드인 소녀와 사랑을 나누는 나날들이 이어지기도 한다. 유대인을 향해 사악한 행위를 거리낌 없이 저질렀던 이들이 그들 각자의 집에서는 좋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듯이, 수용소 역시 온갖 잔학한 행위가 벌어지는 한편 수용자들이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양가적인 공간이었다.
다섯 개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보낸 4년을 담담히 써내려간 이 책은 그곳에서 먹고, 자고, 치과진료소로 오는 이들을 치료하고, 누군가를 만나거나 작별 인사도 건네지 못한 채 헤어지고, 고문을 당하거나 예상치 못한 선의를 받고, 기쁘거나 슬픈 일을 겪은 기억들로 빼곡하다. 5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이 기억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수용자들 사이에 서 있는 당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몇몇 온라인 서평은 이 놀랄 만큼 생생하게 남아 있는 기억에 혹시 지어낸 게 아니냐는 의문을 내비치기까지 했지만, 다른 많은 홀로코스트 회고록이 보여주듯이(홀로코스트 회고록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세월호, 광주 등 거대한 비극에 휘말렸던 이들이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고통은 인간 마음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겨놓는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따라서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 다른 홀로코스트 생환자이자 198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이 이렇게 말했듯이. “기억이 없다면, 우리 존재는 빛이 스며들지 않는 감옥처럼 황량하고 불투명할 것이다.”
추천평
“벤저민 제이콥스는 간결하면서도 정직한 문장으로 수용소 존재의 가차 없고 무의미한 잔혹성을, 결국에는 생존의 기적을 드러낸다.”
- [북리스트]
- [북리스트]
“홀로코스트 생환자의 가공되지 않은 실존적 경험을 다룬 책……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순간을 묘사하는 벤저민 제이콥스의 능력은 이 책이 이룬 가장 위대한 성취다.”
- [브리지]
- [브리지]
“벤저민 제이콥스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목격자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 [퍼블리셔스 위클리]
'24.폭력연구 (박사전공>책소개) > 6.홀로코스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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