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서양철학의 이해 (독서)/6.서양근대철학

철학과 굴뚝청소부 (2005) - 데카르트에서 들뢰즈까지 / 근대철학의 경계들

동방박사님 2023. 9. 10.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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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철학과 굴뚝청소부』는 초판이 출간된 지 벌써 10년이 넘은 책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 동안 이 책은 약칭 ‘철굴’로 불리며 한결같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 이유는 아마 이 책이 근대철학을 단순히 요약·정리해 놓은 개론서가 아니라는 데 있을 것이다.『철학과 굴뚝청소부』는 근대철학과 중세철학 사이에 만드는 경계를 통해, 그리고 탈근대적 문제설정이 근대철학을 넘어서려 하면서 만들어낸 경계를 통해 철학의 역사를 이해하게 해주는 책이다.

『철학과 굴뚝청소부』 초판과 2001년에 나온 증보판은 근대철학의 비조 데카르트에서 출발하여 탈근대철학 편의 푸코에서 끝을 맺고 있다. 그런데 이 끝맺음은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저자 이진경은 오랜 시간 공들여서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을 연구해온 학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고, 이들 철학과의 만남을 정리하여 『노마디즘』이라는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두툼한 결과물을 내놓은 바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탈근대철학을 얘기할 때 들뢰즈와 가타리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철학자들이라 이들에 대한 설명이 이 책에서 빠져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2005년의 개정증보판에는 ‘들뢰즈와 가타리’에 대한 장 '들뢰즈와 가타리 : 차이의 철학에서 노마디즘으로'가 추가되어 근대철학에서 탈근대철학에 이르는 철학사의 흐름에 관심을 갖는 독자는 물론이고 ‘들뢰즈와 가타리’ 철학에 대해 궁금해 하는 독자들의 아쉬움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특유의 논리적이고도 쉬운 설명으로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적 개념어들과 문제의식을 풀어내고 있어, 이 장은 처음 이들의 철학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훌륭한 안내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들뢰즈와 가타리' 편에 새로 추가된 26장의 도판들은 모두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와 그 속편인 '이노센스'에서 뽑은 것으로 인간과 기계의 구분에 대한 문제제기를 담고 있다.

덧붙여 이번 개정 증보판에는 『근대적 지식의 배치와 노마디즘』이라는 제목의 ‘보론’이 추가되었다. 저자는 이 보론에서 근대적 지식 전반을 틀짓고 있는 인식론적 배치와 그것의 경계를 넘으려는 시도들, 그리고 그와 결부된 지적?물질적 생산의 조건들을 다루고 있다. 독자들은 이 보론을 통해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의 실제 의미와 우리가 앞으로 생산해야 할 그리고 소비해야 할 지식의 형태를 어림잡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서론
1. 포스트모던 '시대정신'
2. 철학의 경계
3. 경계읽기와 '문제설정'

제1장 철학의 근대, 근대의 철학
1. 데카르트:근대철학의 출발점
2. 스피노자:근대 너머의 '근대' 철학자

제2장 유명론과 경험주의 :근대철학의 동요와 위기
1. 유명론과 경험주의
2. 로크:유명론과 근대철학
3. 흄:근대철학의 극한
4. 근대철학의 위기

제3장 독일의 고전철학:근대철학의 재건과 '발전'
1. 칸트:근대철학의 재건
2. 피히테:근대철학과 자아
3. 헤겔:정점에 선 근대철학

제4장 근대철학의 해체:맑스, 프로이트, 니체
1. 맑스:역사유물론과 근대철학
2. 프로이트:정신분석학과 근대철학
3. 니체:계보학과 근대철학
4. 근대철학 해체의 양상들

제5장 언어학과 철학 '혁명':근대와 탈근대 사이
1. 언어학과 철학
2. 훔볼트:언어학적 칸트주의
3. 소쉬르의 언어학적 '혁명'
4. 비트겐슈타인:언어게임과 언어적 실천

제6장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근대 너머의 철학을 위하여
1. 구조주의와 철학
2. 레비-스트로스와 구조주의
3. 라캉:정신분석의 언어학
4. 알튀세르:맑스주의와 '구조주의'
5. 푸코:'경계허물기'의 철학

결론:근대철학의 경계들

저자 소개

저 : 이진경 (이진경,본명 : 박태호)
 
지식공동체 수유너머104 연구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인문사회교양학부 교수. 『철학과 굴뚝청소부』를 시작으로, 자본주의와 근대성에 대한 이중의 혁명을 꿈꾸며 쓴 책들이 『맑스주의와 근대성』『근대적 시·공간의 탄생』『수학의 몽상』『철학의 모험』『근대적 주거공간의 탄생』『필로시네마, 혹은 탈주의 철학에 대한 10편의 영화』 등이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새로운 혁명의 꿈속에서 니체, 마르크스, 푸코, 들뢰즈·가타리 등과...

책 속으로

예를 들어 내가 사기를 당한다고 할 때, 사기를 당하는 ‘내’가 없다면 사기를 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무엇을 생각할 때, 회의론자 말대로 내가 잘못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불명확할 수도 있지만, ‘생각하고 있는 나’가 없다면 대체 생각한다는 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의심하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의심하는 ‘나’가 없다면 의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회의론자들이 의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의심하는 사람’(회의론자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만큼은 회의론자들조차 반박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그는 자신의 철학에서 ‘제1원리’로 제시합니다.
--- p.37

그러나 흄은 인과관계란 ‘연접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붙어 있는 두 인상(현상)의 관계에 대한 습관적인 판단’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나무를 비비면 불이 붙는다는 것은 그런 경우를 자주 보다보니 생긴 습관이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게 언제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영화 「불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배운 대로 나무를 맞대 세워 비벼대지만 불은 붙지 않습니다. 그를 따라온 여인이 비비자 불은 다시 붙지만, 어쨌거나 나무를 비비면 불이 붙는다는 건 언제나 반드시 타당한 결론은 아니라는 겁니다. 다만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서, 불이 붙을 것이란 판단을 하는 습관이 형성되어 있을 뿐이라는 거지요.
--- p.127

맑스는 ‘인간’이란 개념 자체를 해체합니다. 그는 ‘인간’이란 포이어바흐처럼 사랑이나 의지를 본질로 하는 존재로 정의될 수 없으며, 데카르트처럼 ‘이성’과 ‘정념’을 가진 존재로 정의될 수도 없다고 하죠.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이 갖는 수많은 특성 중 몇 가지를 추출해서 인간의 본질이 그거라고 선언하는 데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사람마다 인간은 다르게 정의될 수 있을 겁니다. 맑스가 보기에 정말로 중요한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개인들이 어떤 사회적인 특징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단적으로 말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말입니다.
--- p.215

결국 ‘나’ 혹은 ‘자아’라고 부르는 존재는 단일하고 일관된 성격을, 통일성을 갖지 않는다는 게 분명해집니다. 간단히 말하면 ‘주체’는 서로 대립되며 상충하는 부분들로 분열되어 있다는 거죠. 최소한 서로 대면하지 못하는 의식과 무의식, 서로 충돌하며 싸우는 거시기와 초자아로 나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주체란 통일적인 중심이 아니라 매우 이질적인 ‘복합체’이고, 자명한 출발점이 아니라 하나의 ‘결과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인간’이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주체’란 (초자아라는) ‘타자’가 요구하는 규칙을 받아들여 행동함으로써 구성되는 결과물이란 것이지요. 이로써 근대철학의 지반이 해체되는 또 하나의 경로가 그려집니다.
--- p.235
 

출판사 리뷰

데카르트에서 들뢰즈로 향하는 근대철학의 여정,
25년 넘게 사랑받은 철학 입문서의 바이블을 만나다


두 사람의 굴뚝청소부가 청소를 마치고 내려왔다. 한 사람은 얼굴이 더러웠고, 한 사람은 깨끗했다. 과연 누가 세수를 하게 될까? 답은 얼굴이 깨끗한 사람이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서, 자기도 더러우리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근대철학의 목표는 바로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이 일치하는 인식(이것이 근대철학이 말하는 ‘진리’다)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굴뚝 청소부의 예처럼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대상으로 양분되면 인식된 것이 사실과 일치하는지의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게 된다. 그렇다면 진리란 불가능하단 말인가?

진리에 도달하려는 근대철학자는 이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난국을 빠져나가기 위해 여러 가지 탈출구를 찾아내려는 근대철학자들의 시도, 근대철학의 다양한 흐름과 사상은 이런 식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철학’과 ‘굴뚝 청소부’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하나의 제목에 담긴 이유는 굴뚝청소부의 딜레마를 통해 근대철학의 내부와 외부에 있는 경계들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대철학의 딜레마,
주체와 대상은 영원히 일치할 수 없는가?


이 책은 근대에서 포스트모더니즘(탈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주요 철학사상을 개괄적으로 정리한 철학사다. 그러나 단순히 주요 철학자들의 사상을 요약 정리해 놓은 개론적 성격의 입문서는 아니다. ‘근대철학의 경계들’이란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근대철학이 자신과 중세철학 사이에 만드는 경계를 통해, 그리고 탈근대적 문제설정이 근대철학을 넘어서려 하면서 만들어낸 경계를 통해 철학의 역사를 이해하려고 한다. 더불어 각각의 시대 내부에서 다양한 흐름과 철학자들의 사고들이 상충하면서 만들어낸 경계들을 살펴봄으로써 근대는 무엇이며, 탈근대는 또 무엇인지, 그리고 근대를 벗어난다 함은 무엇을 뜻하며, 근대를 벗어나려는 시도가 타당하다면 그 ‘벗어남’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즉 탈근대적으로 사고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요구되는지를 천착하고 있다. 요컨대 이 책은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사고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근대성을 뛰어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기 위한 필요에서 나온 책이다.

저자는 먼저 데카르트에서 비롯되는 근대철학이 신으로부터, 그리고 동시에 대상으로부터 주체를 분리시킴으로써 성립하지만, 주체와 대상의 이분법 위에 구축됨으로써 필연적으로 빠지게 되는 딜레마를 서술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이 딜레마는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을 나누고 양자가 일치하는 게 진리라고 한다면 어떤 지식이나 인식이 진리인지 아닌지는 결코 확인할 수도, 보증할 수도 없다는 난점을 가리킨다(앞서 말한 굴뚝청소부의 딜레마가 바로 그것이다). 이 딜레마는 중세철학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근대철학에만 고유하게 나타난다. 중세에서는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는가,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하는 따위의 문제는 창조론이 설명해 주고, 무엇이 진리인지는 계시론이 보증해 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교회와 성직자의 말에 따르면 충분했으니까.

이어서 저자는 유명론과 근대철학의 긴장관계를 살펴봄으로써 근대의 주체철학이 어떻게 동요하고 위기에 빠지는지, 근대철학을 재건하려 했던 독일의 고전철학이 결국 어떻게 근대철학을 종말에 이르게 하는지, 맑스, 프로이트, 니체가 근대철학을 어떻게 해체하며, 이후 이들의 개념과 방법이 현대철학자나 이론가들에 의해 어떤 식으로 사용되는지를 살펴본다. 그런 다음 언어학을 중심으로 근대와 탈근대 사이의 철학 사상들을 살펴보는데, 소쉬르의 언어학적 혁명의 의미와 난점은 어떠한 것인지, 구조언어학의 난점을 비트겐슈타인이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논의한다. 그리고 이어서 근대 너머의 철학을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를 중심으로 살펴보는데, 레비-스트로스, 라캉, 알튀세르, 푸코가 근대철학의 경계를 어떻게 넘어서며 이들 각각의 한계는 어떠한 것인지를 논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들뢰즈와 가타리를 다루며 근대철학에서 탈근대철학에 이르는 철학사의 흐름을 정리한다. 저자 특유의 논리적이고도 쉬운 설명으로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적 개념어들과 문제의식을 풀어내고 있어, 이 장은 처음 이들의 철학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훌륭한 안내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도판 텍스트와 본문 텍스트의 긴장,
상이한 속도와 리듬 속에서 새로운 사유를 떠올리다


독자들은 『철학과 굴뚝청소부』라는 한 권의 책을 읽으며 두 개의 스토리를 따라가게 된다. 본문 텍스트의 스토리와 도판 텍스트의 스토리가 그것이다. 별개의 스토리 구조를 갖는 도판 텍스트를 본문의 텍스트와 병치시킴으로써 두 텍스트의 긴장과 조화 속에서 새로운 사유가 촉발될 수 있게끔 하였다. 총 81개의 도판과 주석은 12개의 그룹으로 묶이는데, 각각의 철학이 그 위로 펼쳐지며 나름대로 사유의 선을 그리는 그런 소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도판 텍스트는 어느날 사유에게 다가온 것, 사유가 만나는 것, 그리고 사유하면서 사용한 모든 것, 요컨대 사유가 소재로 삼는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는 공장, 병원, 감옥, 과학, 종교, 침략, 강탈, 적, 친구 등을 주제로 한 그림, 사진 등의 작품이 망라되어 있다.

각각의 도판과 주석은 본문과 연관지어서 보아도 좋고, 그것만 따로 떼어내 보아도 좋다. 필자가 “이 책의 주장을 의심하라”고 에필로그에서 권한 것처럼, 독자들은 각각의 도판들을 보면서, 아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사물들을 보면서 나름의 사유들을 펼쳐갈 수 있을 것이다. 도판 텍스트는 독자들을 그러한 사유의 길로 안내하는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본문 텍스트와 도판 텍스트 사이의 상이한 속도와 리듬, 상이한 방식의 서술들 사이에서 독자들 나름의 사유가 촉발될 수 있으리라고, 그리하여 좀더 다양한 사유와 토론이 생성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결과가 의도와 부합하는가의 여부는 내가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새로운 사유의 선들이 그 사이에서 흘러나오길, 그리하여 새로운 사유가 그 텍스트를 가로질러 흘러넘치길 소망한다”고.